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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은 잊지 않는다' 이스라엘의 30년 석방 노력 결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조너선 폴라드.

미 정보당국에서 일하며 이스라엘에 기밀을 빼돌린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 받고 복역 중인 조너선 폴라드(60)가 풀려나게 됐다.
그의 변호인들은 폴라드가 체포된 지 정확히 30년만인 오는 11월 21일 노스캐롤라이나 연방 교도소에서 풀려난다고 28일(현지시간) 밝혔다. 미 중앙정보국(CIA) 등 정보당국은 “폴라드가 수백 년 동안 수감돼도 모자랄 정도의 중죄를 저질렀다”며 반발했지만 이스라엘 정부의 30년에 걸친 끈질긴 노력이 결실을 맺었다.

폴라드는 미국에선 돈 때문에 미국의 글로벌 감시 네트워크 등 수만 건의 1급 기밀을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에 넘긴 스파이였다. 이스라엘 측이 그에게 매월 교통비 명목으로 1500달러(170만원)를 준 것이 드러났다. 폴라드가 “여자 친구에게 청혼하기 위해 다이아몬드·사파이어 반지가 필요하다”고 해 이스라엘 정부가 반지 값을 대주기도 했다.

딕 체니 전 부통령, 도널드 럼스펠드 전 국방장관 등 미 정부 인사들은 재직 당시 석방 불가론을 폈다. 조지 테닛 전 CIA 국장은 1998년 국장 재직 시절 이스라엘의 집요한 공작으로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마음이 흔들리자 "폴라드를 석방하면 내가 사임한다"고 버텨 무산됐다.

미 정보당국의 반발에도 이스라엘 정부는 폴라드 석방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이스라엘은 95년 폴라드에게 시민권을 줬고 98년 정보 획득을 위해 그에게 돈을 준 사실도 인정했다. 당시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총리는 클린턴 대통령에게 그를 사면해달라고 했다. 98년 팔레스타인에 요르단강 서안지구 일부의 자치를 허용한 와이강 협정 때는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폴라드를 석방 안 하면 도장은 못 찍겠다"고 버티기도 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2013년 20만명이 서명한 폴라드 석방 탄원서를 받았다. 시카고트리뷴은 "팬 클럽이 있는 스파이"라 표현했다.

그의 석방이 이란 핵 협상 타결 이후 냉각된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호전시키기 위한 것이란 해석도 있다. 이에 대해 존 케리 국무장관은 28일 "이번 조치는 핵 협상과는 관련 없다"고 일축했다. 미 법무부는 폴라드가 종신형을 선고 받을 때 “30년 복역 후에는 가석방 자격이 주어진다”는 조건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스라엘은 축제 분위기다. 네타냐후 총리는 "그가 풀려나길 고대한다"고 밝혔다. 아일렛 샤케드 법무장관은 페이스북에 "30년간의 고통이 11월이면 끝난다. 큰 기쁨"이라고 썼다.

유대계 미국인 폴라드는 어릴 적 홀로코스트(유대인 학살) 참상을 알게 되면서 시온주의(유대인 국가건설운동)에 빠졌다. 스탠퍼드대를 졸업한 뒤 CIA에 들어가려 했으나 거짓말 탐지기에서 부적격 판정을 받아 실패했다. 이후 미 해군정보처(NIC)에 들어가 소련 "남아공 정보 분석을 하다 84년 해군 대테러경보센터로 자리를 옮겼다. 같은 해 주미 이스라엘 공군 무관 아비엠 셀라 대령과 연결돼 1년 넘게 스파이로 일했다. 85년 폴라드 부부는 체포됐다. 그를 심문한 NIC 수사관 론 올리브는 "첩보 역사상 전무후무한 기록"이라 말했다. 아내 앤은 3년 반 복역한 뒤 출소해 그와 이혼했다. 폴라드는 펜팔로 알게 된 유대계 캐나다인 교사 에스더 자이츠와 93년 옥중 재혼했다.

폴라드와 비슷한 사례로 한국계 미국인 로버트 김(한국명 김채곤·76) 사건이 있다. 미 해군에서 복무하던 로버트 김은 96년 ‘북한 잠수함 정보를 동맹국인 한국 무관에게 알려준 혐의’로 체포돼 8년간 복역하고 2005년 출소했다.

서유진 기자 suh.yo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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