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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물 비리 단골 소품 … 15㎏ 사과 박스 사라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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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굵직굵직한 비리 사건에 어김없이 등장했던 ‘상자’가 사라진다. 15㎏들이 사과 박스다. 27일 농림축산식품부는 15㎏ 규격 사과 상자를 표준거래단위에서 빼기로 했다. 바뀐 제도는 다음달 1일부터 현장에 적용된다. 사과는 현재 15·10·7.5·5㎏ 단위로 포장돼 팔리고 있다. 농식품부는 15㎏을 빼고 10·7.5·5㎏ 세 가지만 포장 규격으로 인정하기로 했다. 정부와 관련 기관, 단체로 구성된 ‘과실 소포장유통협의회’에서 일찌감치 합의한 사항이다. 산지 농협에선 이미 15㎏ 단위 사과 상자를 만들지 않고 있다.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에서도 지난해 12월 규정에서 15㎏ 포장 단위를 뺐다. 농식품부 결정에 따라 다음달 1일 정부 표준규격에서 사과 포장 15㎏ 단위는 완전히 사라진다. 도매시장에서도 15㎏ 단위로 포장한 사과 거래는 중단하고 10㎏ 이하만 취급하기로 했다.

농식품부는 반응이 좋으면 적용 대상을 배로도 확대할 예정이다. 감귤·참외·복숭아 같은 과일은 이미 규격 기준이 소포장 중심으로 바뀌어 있다.

 이번에 없어지는 15㎏짜리 사과 상자는 뇌물·비리 뉴스에 곧잘 등장하던 상자이기도 하다. 1만원권은 3억~4억원어치, 5만원권은 약 20억원까지 담을 수 있어서 뇌물·비자금을 보관하고 전달하는 용도로 종종 쓰였다. 사과 무게가 무거워 다른 상자보다 튼튼하게 만들어진 데다 겉보기엔 흔한 상자여서 뇌물 운반 수단으로 애용됐다. 명절 선물로 사과가 자주 오갔다는 점도 눈속임에 적격이었다. 전성기는 1990년대다. 김영삼 전 대통령 아들 현철씨 비자금 조성(95년), 한보그룹 정태수 회장 뇌물 비리(96년), 전두환 전 대통령 비자금 은닉(96년) 등이 사과 상자가 등장한 대표적 사건이다. 포장 규격이 달라지며 추억(?)의 큰 사과 박스는 앞으로 볼 수 없게 됐다.

 안형덕 농식품부 원예경영과장은 “15㎏들이 사과 상자는 대가족이 많던 시절에 맞는 규격”이라며 “핵가족 시대로 가구 인원이 줄어든 현재엔 적합하지 않다. 포장·판매·배달도 어렵다는 문제가 있었다. 15㎏ 사과 상자를 규격에서 삭제하는 준비는 지난해 말부터 했고 농가를 위해 7~8개월 유예기간을 가졌다”고 설명했다.

최만열 전국과실중도매인조합연합회 사무총장은 “농민이 고령화돼 중량이 무거운 과일 상자는 운반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는데 그 문제도 해소될 것”이라고 했다.

또 “15㎏이면 사과 30개에서 많게는 120개(작은 ‘아오리’ 사과)까지 들어가는데 보통 3층으로 쌓는다. 밑부분이 눌려 썩거나 몇몇 유통인이 안 좋은 상품을 아래쪽에 넣어놓는다거나 하는 사례가 있었다. 소포장 중심으로 바뀌면 소비자도 먹을 만큼 살 수 있어 생산자·소비자 모두 환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농식품부는 대신 소포장으로 바꾸면서 개당 가격을 과도하게 높게 책정하는 일이 없도록 관리·감독을 강화할 계획이다. 세종=

조현숙 기자 newe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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