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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이코노미쿠스] '나베의난'1년, 덮밥체인 스키야의 새벽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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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된장찌개가 있다면 일본에는 규동(소고기덮밥)이 ‘국민 음식’의 반열에 오르지 않을까요. 규동은 일본인들이 사랑하는 음식입니다. 3대 규동 체인으로는 요시노야ㆍ마쓰야ㆍ스키야가 꼽힙니다.

대학 때 어느 날 갑자기 학교 앞 번화가에 ‘보통의’ 패스트푸드 체인을 물리치고 요시노야라는 덮밥 가게가 등장한 적이 있어 놀랬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그곳도 알고 보니 일본식 패스트푸드점이더군요. 패스트푸드라도 밥인데…. 햄버거는 혼자 먹어도 밥은 혼자 먹기 거시기한 탓에 가 본 적은 없습니다. 햄버거 가격보다 비쌌던 것 같기도 하고, 백반집 가면 불고기 덮밥에 반찬도 한 상 가득 차려주는데 이곳은 덜렁 밥만 주고…. 굳이 갈 이유가 없었던 듯 합니다(저 같은 사람이 많아서일까요.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을 닫았습니다)

규동 얘기를 꺼내는 건 요시노야가 아니라 스키야(すき家) 얘기를 하고 싶어서입니다. 27일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닛케이)신문은 ‘나베의 난’ 이후 1년여가 지난 스키야의 현재를 다뤘습니다. ‘나베의 난’은 지난해 봄 전국 스키야 지점에서 벌어진 아르바이트생들의 집단 퇴직 사건을 일컫는 말입니다. ‘만국의 알바들이여 대동 단결하라’는 지침이라도 하달 받은 듯 스키야의 알바생들이 지나친 근무 강도를 견디지 못하고 일시에 사표를 던졌습니다.

스키야가 다른 곳에 비해 시급을 더 쳐 주기는 합니다. 닛케이가 취재한 도쿄 교외의 한 스키야 점포의 야간(밤 10시~새벽 5시) 시급은 현재 1200엔(약 1만1300원)입니다(한국의 최저임금 6030원의 두 배에 육박하네요). 주변의 다른 편의점(1030엔)이나 패밀리 레스토랑(1125엔)에 비하면 시급이 100엔 정도 높습니다. 그런데도 주인은 알바생이 없어서 밤 11시면 가게 문을 닫아야 한다고 하소연합니다. 취재진이 근처 패밀리 레스토랑서 일하는 알바생에게 물었더니 “저쪽(스키야)이 돈은 많이 줘도 일이 너무 ‘빡 셀’ 것 같다”고 답하더군요.

높은 시급을 감안해도 근무 강도가 너무 세다는 겁니다. 스키야의 살인적인 노동 강도를 상징하는 스키야만의 근무 시스템으로 ‘완오페(원 오퍼레이션)’라는 게 있습니다. 한 마디로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고 해야 한다는 거죠. 손님이 적은 평일 오후 2~6시, 오후 11시 30분~오전 6시 사이에는 직원 한 명이 손님 응대는 물론이고 음식 조리, 설거지, 청소에 영업보고서까지 써야 하는 근무 시스템입니다. 돈 때문에 방범 보안장치를 설치하지 않은 점포에서 일하면 강도들의 먹이감이 될 우려도 크죠.

이런 가운데 작년 2월 새로 출시된 메뉴 ‘소고기 나베 정식’이 알바생들의 분노를 폭발시켰습니다. 삶은 소고기와 야채·두부 등 재료를 1인분씩 담아 냉장 보관하는 등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었습니다. 냄비를 씻는데도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함께 일하는 직원이라도 있으면 모를까 혼자서 감당하기에는 벅찬 메뉴였습니다.

인터넷 사이트에 한 알바생이 “이걸 하느니 그만 두고 만다”고 선언하고 난 뒤 다른 알바생들의 동참이 이어졌습니다. 신 메뉴 출시 한 달 뒤부터 집단 퇴직이 이뤄졌습니다. 이걸 인터넷에서는 ‘나베의 난’이라고 부른 것이고요. 알바생들의 집단 퇴직에 전국 2000개 스키야 점포 중 123곳이 문을 닫거나 영업시간을 단축했습니다. 스키야는 당장 소고기 나베 정식 판매를 중단했고, 스키야를 운영하는 젠쇼홀딩스는 작년 4월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제3자 위원회를 설치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1년여가 흐른 지금도 스키야는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지난해 10월 스키야는 2000개 점포 중 완오페가 불가능한 1200개 점포에서 심야 영업을 일단 정지했습니다. 그리고 알바생을 충원해 심야 영업 가능 점포를 늘려갔지만, 6월 현재까지 아직도 450개 점포가 심야 영업을 재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회사 측은 “당초 4월에서 9월까지는 모든 점포에서 심야영업이 가능하도록 하겠다”는 입장이지만 가능할지는 의문입니다.

워낙 알바생들 사이에서 악명이 높은데다 학생 알바생들을 대신할 인력으로 외국인 채용을 늘리겠다는 계획도 녹록하지 않습니다. 일본어가 능숙하지 않은 탓에 이들은 완오페가 불가능합니다. 현장 투입 전에 업무 교육을 철저히 하겠다지만 일본어가 하루 아침에 능숙하게 될 리는 없죠.

신문은 “스키야의 심야 영업은 스키야 성장의 원동력이었다”고 평가합니다. 하루 24시간 언제든 소고기 덮밥을 먹을 수 있다는 이미지를 고객에게 심어줌으로써 고객들은 스키야를 찾고, 24시간 가게를 운영하는 덕에 재료 폐기 등의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스키야의 모회사인 젠쇼는 창업 30년 만에 일본 외식 업체의 선두 기업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고요.

그러나 스키야의 살인적인 노동 강도에 대한 비판이 거세진 지금, 과거 성장의 원동력이었던 완오페나 심야영업은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됐습니다. 젠쇼의 고위 임원 중 한 명은 인터뷰에서 “우리(스키야)의 노동 방식을 개선하라는 사회적 요구가 있어 당장은 응하고 있다”며 “하지만 지금까지 내가 일해왔던 방식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것 같아 괴롭다”고 밝혔습니다.

과중 노동 문제를 해결하면서 동시에 다시 성장 궤도에 올라야 하는 스키야. 신문은 뾰족한 답이 없는 현재로서는 “스키야의 새벽은 멀었다”고 평가했습니다.

고란 기자 neoran@jo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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