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서 패션에 맛들인 요리사, 디자이너로 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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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뉴욕 컬렉션에 데뷔한 장형철 디자이너. [사진 오디너리 피플]

지난 13~16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세계적인 패션 행사인 ‘뉴욕 패션위크’가 열렸다. 올해는 처음으로 남성복만을 따로 분리, ‘2016 봄·여름 남성복 컬렉션’을 개최해 전세계 패션 피플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수많은 디자이너가 참가한 이번 컬렉션에서 미국·중국 등 여러 나라의 패션 관계자들로부터 관심을 받은 동양인 디자이너가 있었다. 바로 한국의 장형철 디자이너다.

 올해 32세인 장씨는 뉴욕 컬렉션에 진출한 국내 디자이너 중 최연소 참가자다. 이미 서른 살이던 2013년, 서울 패션위크에 최연소 디자이너로 참가하면서 국내 패션계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이번 뉴욕 컬렉션에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 콘텐츠진흥원의 글로벌 프로젝트인 ‘컨셉 코리아’를 통해 한국 대표로 참가하게 됐다.

현지 반응은 뜨거웠다. 컬렉션 발표 후 수많은 기업으로부터 협업 제의가 쏟아졌다. 아시아 디자이너들의 인지도가 낮은 뉴욕 패션 시장에서 한국의 젊은 디자이너가 주목을 받을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 장씨는 “실용성을 추구하는 뉴욕 스타일과 잘 맞아떨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 패션쇼의 주제는 ‘액티브 마에스트로’(Active Maestro)다. 활동성과 예술성을 두루 갖춘 남성복을 맞드는 데 초점을 맞췄다. 런웨이에서 바로 내려와 길거리에 나가도 어색하지 않은 옷을 만드는 것이 나의 철학이다.”

그가 선보인 남성복. [사진 오디너리 피플]

 ‘오디너리 피플’(평범한 사람들)이라는 그의 브랜드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장씨는 평소 ‘입기 편한’ 옷을 주로 디자인해왔다. 이번 컬렉션에선 티셔츠·샌들과 접목시킨 정장 등 최근 유행하고 있는 스포티즘과 전통적인 남성복을 적절히 조합한 옷으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최근의 이력만 보면 유명한 패션학교에서 공부한 유학파이거나 패션계에 입문한 지 오래됐을 거라고 짐작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그는 유학은커녕 패션과는 거리가 먼 ‘요리사 지망생’이었다.

 “고3 때부터 요리학원을 다녔다. 식품조리학과에 진학해 한식·양식부터 제과·제빵까지 섭렵했다. 군대에서 인생이 바뀌었다. 군생활 중 유일한 낙이 패션 잡지를 보는 것이었다. 매월 나오는 잡지를 빠짐없이 챙겨보며 요리할 때보다 더 큰 흥미를 느꼈다.”

 옷에 관심이 많다 보니 휴가 나갈 때마다 “옷 좀 골라 달라”며 찾는 고참들이 많았다. 다른 사람들의 스타일을 완성시키는 데 재미를 느낀 그는 제대 후 서울패션전문학교에 진학해 본격적으로 디자인을 공부했다. 이후 고태용 디자이너 밑에서 4년간 몸으로 부딪히며 일을 배웠고 2011년 자신의 브랜드를 내놓았다. ‘과연 성공할까’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옷을 만들자’라는 생각밖에 없었다. 첫 달 매출은 1300만원. 직원 한 명 없이 혼자 이룬 성과였다. 장씨는 “처음 잡지를 보며 독학할 때나 혼자 옷을 팔 때에도 포기하고 싶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했다. 성공적으로 뉴욕 컬렉션을 마무리한 그는 내년까지 서울·뉴욕 등에서 4번의 쇼를 더 열 계획이다. 그는 “K패션이 아시아는 물론 미국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으로 본다. 실용적이면서 디자이너의 감성을 느낄 수 있는 남성복으로 전세계에 K패션을 알리고 싶다”고 했다.

신도희 기자 to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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