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법안 반대” 국민 외침도 … 아베 야욕 못 꺾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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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오후 2시 7분 일본 중의원 회의장. 집단적 자위권 행사가 포함된 11개 안보법안 처리는 예상과 달리 일사천리로 이뤄졌다. 법안을 반대해온 민주·유신·공산당이 표결 직전 퇴장하면서 회의장은 연립여당인 자민·공명당 독무대가 됐다.

 오시마 다다모리(大島理森) 중의원 의장이 가결을 선포하자 의석에 앉아있던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박수를 쳤다. 이어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여 인사한 뒤 활짝 웃으면서 자민당 의원들과 악수를 나눴다. 전날 야당의 야유와 고함 속에서 진행된 중의원 특별위원회와는 딴판이었다. 중의원 3분의 2 이상을 확보한 연립여당은 거침이 없었다. 야당은 무기력했고 존재감도 없었다. 아베 총리는 법안 통과 후 “일본 국민의 생명을 지키고 전쟁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법안”이라고 말했다.

  같은 시각 국회의사당 앞. 시민 1000여 명이 “법안 폐지” “법안 철회”를 외치고 있었다. 집회 참가자들은 저마다 ‘전쟁 반대’ ‘아베 정권을 용서할 수 없다’ ‘(평화헌법) 9조를 파괴하지 말라’ 등의 피켓을 들고 있었다. 스즈키 마사노리(63·도쿄도)는 “아베 정권의 폭주를 걱정해 나왔다”며 “전쟁으로 가는 법안이 성립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전날 의사당 주변에선 6만여 명(주최 측 추산)이 법안 반대 시위를 벌였다. 반대 시위는 당분간 계속될 분위기다.

 안보법안의 중의원 통과로 법안 성립은 시간 문제가 됐다. 법안은 이날 참의원으로 넘어갔지만 참의원 역시 연립여당 의석이 과반을 넘는다. 설사 참의원에서 의결이 이뤄지지 않더라도 60일 후에 중의원에 다시 회부돼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성립된다. 자민·공명당의 결속 정도에 미뤄보면 공명당이 이탈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NHK는 “안보법제가 성립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안보법제가 성립되면 자위대의 역할과 활동에 일대 변화가 생긴다. 집단적 자위권 행사가 인정되면서 해외에서 자위대의 무력 행사가 가능해진다. 법안은 일본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타국에 대한 무력공격으로 일본이 존립위기 사태를 맞았을 때 등의 한정적 조건 하에서 집단적 자위권을 발동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일본이 전쟁에 휘말릴 가능성에 대한 일본 내 학자나 시민들의 우려는 크다. 안보법안은 동시에 자위대가 상시적으로 해외에서 유엔평화유지활동(PKO)과 미군 등 후방 지원도 할 수 있도록 했다. 1992년 PKO법 제정으로 자위대가 일본 밖으로 나간 이래 가장 큰 변화다. 자위대(Self-Defense Force)란 말 자체가 무색해지는 셈이다.

 법안이 성립되면 미·일 동맹은 보다 강화된다. 미·일 양국은 이미 4월 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 개정을 통해 ‘틈새 없는 안보 체제’의 뼈대를 만들었다. 미·일 동맹의 성격도 정치동맹에서 군사동맹으로 바짝 다가선다. 일본의 적극적 안보 공헌은 방위비 증대를 부를 가능성이 있고, 이는 동아시아의 군비 경쟁을 재촉할 수도 있다.

 엔도 세이지(遠藤誠治) 세이케이(成蹊)대 교수는 언론 인터뷰에서 “억지력 강화를 위해 군사적 대응만 강화해서는 중국 등이 일본에 대항하는 군비 확장을 정당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아베 내각의 적극적 평화주의에 따른 안보법제로 일본의 전수(專守)방위는 중대 분수령을 맞고 있다.

도쿄=오영환 특파원 hwas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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