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우 질타 듣고 우뚝 선 우리카드 김광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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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 약을 먹고 우뚝 섰다. 우리카드 세터 김광국(28)이 달라진 경기력을 선보이며 컵대회 승리를 이끌었다.

김광국은 지난 이틀간 화제의 중심이었다. 14일 충북 청주체육관에서 열린 KOVO컵 프로배구대회 남자부 B조 2차전 현대캐피탈전 이후 김상우 우리카드 감독이 "프로 수준의 경기력이 아니었다. 국가대표에 갈 정도가 아니다"라고 일침을 가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카드는 세터 김광국이 흔들리면서 2연패에 빠져 예선 탈락 위기에 놓였다.

하지만 이틀 뒤 김광국과 우리카드는 한층 나아진 모습을 보였다. 우리카드는 16일 충북 청주체육관에서 열린 예선 최종전에서 한국전력에 3-1(22-25 25-19 28-26 25-22) 역전승을 거뒀다. 1세트를 먼저 내줬지만 2세트부터 나아진 조직력을 선보였고, 3세트에서는 듀스 끝에 승리했다. 2패 뒤 1승을 거둔 우리카드는 한국전력(1승2패)을 세트 득실차(우리카드 -2·한국전력 -3)로 제치고 조 3위로 올라섰다. 오후 7시부터 열리는 삼성화재-현대캐탈전 결과에 따라 4강 진출도 내다볼 수 있게 됐다.

경기 뒤 김상우 감독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김 감독은 "선수들이 편안한 마음으로 들어간 게 승인이다. 예선 두 경기와 다르게 최홍석을 아포짓(라이트)으로 쓰고, 신으뜸의 리시브 부담을 이동석에게 나눠줬다"며 "4강 진출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계속 지면 습관이 되는데 3세트 고비를 잘 넘겼다. 겨울리그를 준비하는 데 있어 자신감을 얻은 것 같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이날 김광국의 플레이에 대해 "점수로 매기긴 어렵다. 오늘 경기는 안정적이고 소통이 잘 됐다. (세터는)본인이 잘하고 못하고가 중요하지 않다. 공격수들이 도와주더라도 이기면 잘 한 것"이라고 평했다. 이어 김광국에게 했던 질타에 대해서는 "자극이 됐으면 했다. '아무리 안 되더라도 이 정도는 아니었을텐데'라는 생각을 했다. 본인도 많이 괴로워했고 오늘은 의지를 강하게 가지고 나온 것 같다"고 했다. 김 감독은 불화 여부에 대해서는 "갈등이 있는 건 아니다. (패인이)세터 문제가 아니라고 말할 수도 있었지만 본인이 기사를 보면서 조금은 생각해주길 바랐다. 그런데 생각보다 기사 수위가 높아 조금 놀랐다"고 웃었다.

경기 뒤 김광국의 표정은 홀가분한 듯 했다. 그는 "기사를 봤다. 틀린 말이 아니니까 기분 나쁠 것이 없었다. 나는 아직 모자란 부분도 많다. 사실 그날 저녁에 감독님이 불러 좋은 얘기 많이를 해줬다. 나는 기복이 너무 심한데 평정심을 찾으라고 조언해줬다"고 말했다. 이어 "그때까지의 경기에 대해 반성도 하지 말라고 아예 처음 대학 졸업하고 팀에 온 것처럼 잊으라고 말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김 감독은 이날 경기에서는 김광국을 편하게 해주려고 기술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전혀 지적을 하지 않았다. 그저 '독하게 하라'는 주문만 했다. 김광국은 "오늘도 조금씩 흔들린 부분이 있었지만 (최)홍석이와 (신)으뜸이가 안 좋은 공도 잘 처리해줬다"고 말했다.

사실 김광국은 이번 대회를 완벽하게 준비할 수 없었다. 국가대표로 선발돼 월드리그 유럽 원정에 다녀오면서 팀 훈련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김광국은 "나보다 공격수인 홍석이가 더 힘들었을 텐데 사실 시차 적응 문제가 있긴 했다. 세터는 공격수와의 호흡이 중요한데 대표 선수들과 맞추다 팀원들과 하려니 조금 삐거덕거린 부분도 있다"고 털어놨다. 한 차례 시련은 김광국에게 성장통 같았다. 김광국은 "(4강에 진출해)한 번 더 경기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의 눈빛에선 김상우 감독이 강조한 '독기'가 조금은 엿보였다.

청주=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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