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한대 기자의 퇴근 후에] 도덕적 잣대로 그녀를 평가할 수 있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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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햇빛샤워

[사진 남산예술센터]

그의 이름은 ‘이광자’다.

미친년, 고스톱의 똥광, 비광이 떠오른다 하여 자신의 이름을 바꾸려 한다, 연극 ‘햇빛샤워’는 광자, 그녀의 이야기다.

광자는 백화점 판매원이다. 매니저 자리에 오르기 위해 직장 상사인 과장(이동혁 분)에게 몸을 판다. 용돈 벌이를 위해 물류(김동규 분)를 유혹한다. 광자는 “나는 아무 남자하고도 잘 잔다. 아니 잘 때운다. 돈 없어서 때우고, 빽 없어서 때운다”고 울부짖는다.

또 다른 인물은 동교(이기현 분)다. 스무 살, 덜 떨어진 청년이다. 반지하 방에 세 들어 사는 광자를 좋아한다. 연탄가게 하는 양부모 밑에서 일하며 월급 대신 받은 연탄으로 남을 돕는다. 자신의 선행이 알려지면서 동교는 “원하지 않았는데 계속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가는” 자신을 본다. 광자와의 대화에서 답을 얻고 한 가지 선택을 한다. 그런 동교의 선택은 옳은 것인가, 옳지 않은 것인가. 이 선택을 보고 광자가 택한 길은 또 옳은 것인가, 옳지 않은 것인가. 이들의 선택은 도덕이란 우람한 언덕 저 멀리 떨어져 있다.

[사진 남산예술센터]

극에서 가장 매력적인 인물은 광자다. 사회의 사다리에 한 발 더 올라서기 위해 그는 자신을 내던진다. 도덕적 잣대에서 보면 등장인물 물류의 말대로 “광자는 썅년” 일지 모른다. 그러나 광자의 삶 속에 빠져 그의 행동을 보면 관객은 도덕적 잣대로 그를 비판할 수 있는가. 최소한 이 극 속에서는 쉽지 않다.

광자는 입체적이다. 인물들이 등장할 때마다 그에 대한 파편화된 기억을 말한다. 생기 있고 아름답고 웃음이 많은 여자로 드러난다. 그가 동교를 생각해주는 장면에서는 광자의 심연 속 따뜻함이 마치 향기처럼 흘러 나온다.

급작스러운 결말에 이르긴 하지만 그가 이야기 내내 보여준 현실적인 인식은 씁쓸하지만 관객의 공감을 이끌기 충분했다. 작·연출을 맡은 장우재는 극 속에 많은 장치를 해놨다. 인물이 추구하는 행동과 의미심장한 대사로 관객에게 생각거리를 던져줬다. 그래서 어려운데, 그래서 흥미롭다.

연극 ‘햇빛샤워’는 26일까지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02-758-2150.

강남통신 조한대 기자 cho.hand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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