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구매 요청, 軍서도 찬반 팽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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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첨단 무기 구매 요청은 어느 정도 예견돼 온 일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을 전후해 세계 11위권의 경제력을 내세우며 대등한 한.미 동맹관계를 주창하자, 미 의회 등지에선 주한미군이 담당하는 역할을 한국군이 담당토록 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불거져 나왔다.

이같은 주장들은 지난 4월 열린 '미래 한.미동맹 정책구상 공동협의' 1차회의에서 한.미가 주한미군이 담당해온 '특정임무'를 한국군이 맡기로 했다고 합의함으로써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당시 미측 수석대표 리처드 롤리스 국방 부차관보는 기자회견에서 '특정임무'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세계 11위 경제대국인 한국의 힘을 동맹관계에 반영한다는 취지"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어 리언 러포트 주한미군 사령관이 지난달 29일 조영길 국방장관에게 AH-64D 아파치 롱보 헬기와 최신형 패트리엇 미사일(PAC-3) 구입을 요청했다.

이틀 뒤 한.미 양국은 향후 3년간 1백10억달러 이상을 들여 주한미군의 전력을 증강한다는 계획을 이례적으로 공개했다. 전력증강 계획은 비공개로 추진하는 것이 기존 관례였다.

이후 한국을 방문한 폴 울포위츠 미 국방부 부장관과 러포트 사령관이 2일과 3일 잇따라 한국의 국방비가 증액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울포위츠 부장관은 "북한은 남한을 위협하는 미사일망을 구축하고 있다. (패트리엇은) 걸프전 등에서 많은 인명을 보호했고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미측의 이런 움직임에 따라 국방부 내에선 새롭게 논란이 일고 있다.

국방부는 1990년대 초부터 1조9천억원의 예산을 들여 2개 대대 규모(발사대 48기)의 패트리엇 미사일 도입을 위해 미 레이시언사와 구매 협상을 벌여왔으나 너무 비싸다는 이유로 지난해 협상을 결렬시키고 자체 개발을 검토키로 한 바 있다.

아파치 헬기도 2조1천억원을 들여 36대(2개 대대)를 구입하려다 2001년 국회가 구릉이 많은 한국 지형에 맞지 않다는 이유로 예산을 전액 삭감하자 다음해 한국형 다목적헬기사업(KMH)을 추진하는 것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러나 미국의 요청이 자주 제기되면서 일부 당국자들은 주한미군의 전력 증강에 상응하게 우리도 전력 증강을 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패트리엇 미사일의 경우 현재 한국군의 방공 미사일 나이키 호크가 지나치게 노후해 도입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있다.

반대론자들은 "국방예산이 빠듯한 만큼 패트리엇 미사일과 아파치 롱보보다 한국군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대북 정보 수집 장비 등을 먼저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한편 국방부가 패트리엇 미사일을 도입키로 결정할 경우 현재 미국이 추진하고 있는 동북아 미사일방어(MD)체제에 사실상 한국도 참여하는 셈이 된다.

이철희 기자

<사진 설명 전문>
부산항 도착한 최신형 아파치 주한 미8군 예하 6항공여단 소속 1개 대대(20여대) 규모의 신형 AH-64D 아파치 롱보 헬기가 지난주 부산항에 도착했다. 미국이 우리 정부에 구매를 요청한 것과 같은 기종인 이 헬기는 다음주까지 조립돼 오는 16일께 평택 캠프 험프리에서 공개될 예정이다. [주한미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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