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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향해 노력한 스토리가 필요하다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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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박혜민 기자 중앙일보 팀장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박혜민
메트로G팀장

“엄마, 내가 뭐가 되면 좋겠어?”

 중학교 1학년 딸이 진지하게 물었다.

 “글쎄, 그림 잘 그리니까 미대에 갈까?”

 “ 하루 종일 그림만 그리는 건 싫어.”

 “그럼 일단 외고를 가야 하지 않을까.”

 “난 영어도 싫은데?”

“그래도 수학보단 낫잖아. 외고에 가야 좋은 대학을 갈 수 있다잖니.”

“ 그런데 이번 기말고사 망쳤는데 어쩌지.”

 “외고 입시에 독서기록이 중요하대. 올 여름방학에 독서논술학원을 다녀볼까.”

 “재미없는 책 읽기 싫은데…. 잘하는 것도 없고, 되고 싶은 것도 없고. 난 왜 이럴까.”

 중1 딸의 미래 걱정은 꽤 진지하다. 외고 자기소개서에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 내용을 써야 한다는데 자긴 아직 뚜렷한 꿈이 없어 고민이고, 대학을 나와도 취직할 곳이 없다는 게 벌써 걱정이다.

 평준화 시대에 중·고등학교를 다녔던 나는 중학생이 장래 고민을 하는 게 낯설다. 친구들과 어울려 놀 시간도 부족할 중학생이 먼 미래까지 뭘 그리 고민을 하나 싶다.

 그러면서도 슬슬 걱정이 된다. 중3 아들의 생활기록을 살펴보니 어디 가서 자랑할 만한 게 없다. 회장·부회장 한 번 안 했고, 무슨 경시대회에서 상을 탄 기록도 없다. 자사고에 가려면 자신만의 스토리를 담은 자소서가 필요하다는데 딱히 스토리랄 게 없다. 남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로드맵을 짜서 각종 스펙을 쌓아 가며 대입을 준비한다는데 로드맵이란 게 있다는 것도 얼마 전에야 알았다. 한창 친구들과 노는 재미에 빠진 아들에게 그런 말이 먹힐 것 같지도 않다.

 방학이 가까워 오니 학부모 대상 ‘여름방학 학습 전략 특강’ ‘특목·자사고 입시 분석 및 합격 전략’ 등을 알리는 문자가 휴대전화에 쏟아진다. 참석해야지 하고 살펴보면 평일 낮 시간이거나 이른 저녁이다. 별수 없다. 아이들이 알아서 공부하고 미래 전략까지 수립하길 바랄 수밖에.

 대학 졸업 때까지도 뭘 해야 할지 고민했고, 회사에 들어온 후엔 또 ‘이 길이 내 길인가’ 내내 갈등했다는 엄마의 얘기가 아이에게 과연 도움이 될까. 뚜렷한 목표를 갖고 그 방향에 맞춰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평가한다는 입시 전형. 없는 꿈이라도 만들어야 하는 현실에서 그런 얘기는 별 도움이 안 될 것 같다.

 문득 궁금해진다. 꿈을 가져라,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라고 하지만 그게 혹시 아이의 꿈이 아닌 부모의 꿈인 건 아닌지, 그냥 아이들을 평가하기 위해 거짓 꿈이라도 만들어 내라고 강요하는 건 아닌지 말이다.

박혜민 메트로G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