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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군 최초 전투기 조종사 이근석 장군 추모식에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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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중이던 1950년 7월 4일 경기도 안양 상공. 왼쪽 날개에 불이 붙은 대한민국 공군 전투기 F-51 무스탕 한 대가 연기를 내뿜으며 북한군 탱크 20여 대가 있는 무리로 돌진했다. 전투기는 곧 북한군 탱크 속에서 폭발했다. 북한군의 대공포를 맞아 고장이 나자 조종사는 귀환이나 탈출 대신 적군 속으로 그대로 돌진해 산화한 것이다.

65년이 흐른 9일 오전 대구 공군제11전투비행단. 서울·광주 등 전국에서 6·25전쟁 참전 퇴역 공군 150여 명이 모였다. 북한군과 함께 산화한 무스탕 전투기 조종사 이근석(1917~1950) 장군을 추모하기 위해서다.

대한민국 공군은 보라매의 상징으로 그를 매년 추모하고 있다. 1953년 경남 사천 공군기지에 처음 동상을 만들었고 1962년 대구로 동상을 옮겨온 뒤 매년 7월 기일을 전후해 추모식을 열고 있다. 공군 의장대와 군악대 50여 명이 군악을 울리고 한국항공소년단 30여 명도 동상 앞에서 경례를 한다. 공군 군수사령관 등 현역 공군 장성들도 매년 참가한다. 대구는 이 장군이 생전 마지막으로 출격한 곳이다.

산화할 당시 대령이던 이 장군(사후 태극무공훈장·준장 추서)의 이름 앞에는 늘 공군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대한민국 공군 창군 7인 중 한 명인 그는 공군 최초의 공군 전투기 조종사다. 또 공군사관학교 초대 교장이다. 미군이 지원한 공군 최초의 전투기 무스탕 10대를 일본에서 직접 인수해온 인물이기도 하다. 6·25전쟁 때는 비행기에서 맨손으로 북한군에게 포탄을 떨어뜨린 최초의 공군으로도 유명하다.

이날 독수리가 그려진 검정색 모자를 맞춰 쓴 퇴역 공군들은 모두들 여든을 넘겨 검은 머리는 백발, 얼굴엔 검버섯이 드문드문 피어 있었다. 하지만 이 장군의 동상 앞에서 “필승” 구호를 외치며 경례를 할 때는 군기가 잔뜩 든 군인이었다.

무스탕 전투기 조종사였던 김용수(86)씨는 "대전·평택·사천 등 8곳을 오가며 이 장군과 같은 전투기를 몰고 전장을 누볐다"며 "두려움이 엄습할 때마다 선배 조종사인 그를 생각하며 이겨냈다"고 말했다. 김순유(81)씨는 "대구에서 공군 사병으로 근무 중일 때 이 장군이 출격했고 산화했다는 말도 들었다"며 "당시 부대 전체가 울음바다였고 어서 전장으로 나가 싸우자며 울분을 토하는 병사들도 많았다"고 회고했다.

오진영 대구지방보훈청장은 "추모식은 단순히 호국 영웅에 대한 예우 차원이 아니다"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 공군인 오헤어가 일본군 비행대와 목숨을 걸고 싸운 것을 기념해 미국 정부가 시카고 국제공항의 이름을 오헤어로 지었듯 대한민국에게 이 장군의 추모식은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국가보훈처는 지난달 우정사업본부와 함께 그의 얼굴이 담긴 호국영웅 우표를 발행했다.

대구=김윤호 기자 youknow@joongang.co.kr
[사진 대구지방보훈청]
[사진 공군역사기록관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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