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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유승민 침묵의 대치 … 친박 “오늘까지 지켜본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는 6일에도 자신의 거취에 관해 아무런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친박근혜계가 유 원내대표의 사퇴를 촉구하는 집단행동에 나서기에 앞서 미리 그어놓은 ‘데드라인’도 사실상 넘어섰다. 당초 친박계는 이날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국회법 개정안의 재의가 무산된 뒤 유 원내대표가 자진 사퇴를 하거나 적어도 조만간 사퇴하겠다는 입장 정도는 밝혀달라고 요구해왔다. 하지만 유 원내대표는 오전 출근길에 기자들이 “거취와 관련해 입장을 밝힐 것이냐”고 묻자 “안 한다”고 답한 뒤 종일 사퇴와 관련한 취재진의 계속된 질문에 함구했다. 오후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새누리당 의원들의 표결 불참으로 국회법 개정안 재의가 무산된 데 대해선 “안타깝게 생각한다”고만 했다. 사퇴 여부를 계속해서 묻는 기자들에게는 “저는 오늘 모르겠다”고 했다.

 서청원 최고위원과 김무성 대표가 이날 오전 유 원내대표를 각각 독대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서 최고위원은 오전 당 최고위원회의가 끝난 뒤 유 원내대표를 12분간 따로 만나 “당·청 관계를 정상화해야 하지 않겠느냐. 결단을 내려달라”는 취지로 설득했다고 한다. 하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고 한다.

 20여 분 뒤 이번에는 김 대표가 국회 원내대표실로 찾아가 유 원내대표와 28분간 대화했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김 대표가 2012년 총선 때 공천에서 떨어졌지만 탈당 대신 백의종군하고 당을 위해 선거를 도왔던 것처럼 유 원내대표도 당을 위해 결단을 한 뒤 나중을 기약해야 한다는 취지로 설득하지 않았겠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상황은 변함이 없었다. 김 대표와 만난 유 원내대표는 “내가 사퇴할 이유를 모르겠다”는 취지로 자진사퇴 요구를 거부했다고 한다.

 지난달 29일 비공개 최고위원회의에 이어 유 원내대표의 강경한 입장이 재확인되자 새누리당 의원들 사이에선 유 원내대표의 강제 사퇴가 불가피하다는 여론이 확산하고 있다. 그동안 친박계와 유 원내대표 사이를 중재하는 역할을 하던 김 대표도 이날 당 최고위원회의 공개 발언에서 “국회법과 관련해서 이런저런 이야기가 많지만 당·청은 공동운명체이자 한 몸으로 박근혜 정부의 성공이 곧 새누리당의 성공임을 다시 한번 말씀드린다”며 우회적으로 유 원내대표를 압박했다.

 김 대표와 가까운 한 의원은 최고위원회의 전 기자들과 만나 “계속 이렇게 (당·청 관계에) 불만이 생기면 대통령도 힘들지만 극단적으로 얘기하면 대통령은 이미 되신 분이다. 앞으로 정권을 이어나가야 할 당이 피해를 입지 않겠느냐”며 “유 원내대표가 큰 잘못은 없지만 당을 위해 물러나야 한다”고 말했다.

 초·재선 의원들의 모임인 ‘아침소리’도 이날 “당·청 갈등이 오래 가면 안 된다”는 의견을 모았다. 이 모임에 참석한 이노근 의원은 “당이 이렇게 분열되는 심각한 상황에 대해 정말 개탄스럽게 생각한다”며 “이 문제는 얼마 남지 않은 선거와 직결되기 때문에 빨리 슬기롭게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 원내대표가 자진 사퇴를 거부하면서 그의 거취 문제는 이제 여권 내 딜레마가 되고 있다. 당내에선 의원총회에서 재신임을 묻는 방법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라는 주장도 불거지고 있다. 유 원내대표의 측근들은 이날 유 원내대표에게 “(본회의가 끝난 뒤) 어떤 입장 표명조차 없이 가는 건 안 된다”며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다. 의원들이 거취를 정해주면 겸허히 따르겠다’는 의사를 본회의 이후 반드시 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유 원내대표 본인도 의원총회에서 재신임을 묻겠다는 의지가 강하다고 한다. 의총에서 뽑힌 원내대표인 만큼 의총에서 사퇴도 결정해야 명분이 있다는 의미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25일 거부권을 행사한 뒤 열린 의원총회에선 유 원내대표가 사실상 재신임을 받았다. 의원들은 이번에 다시 의총에서 유 원내대표의 신임 여부를 물으면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다고 말하고 있다.

허진 기자 b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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