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빵 소송 중재, 야당의원의 편지가 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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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빵’을 둘러싼 대기업과 동네빵집 간 법정 싸움이 지난 달 '소 취하'라는 평화로운 방식으로 마무리됐다. 거저 된 건 아니었다. 중재자가 있었다. 다름아닌 동네빵집이 있는 파주를 지역구로 둔 야당의원이었다.

SPC그룹의 파리바게트와 경기 파주 프로방스베이커리의 특허무효청구소송을 중재한 건 새정치민주연합 윤후덕(경기파주갑·초선) 의원이다.
프로방스 베이커리와 파리바게트는 ‘교황빵’을 놓고 올 초부터 다툼을 벌여왔다. 시작은 지난 2014년 8월 프란체스코 교황이 방한했을 때 점심 간식상에 프로방스 베이커리의 ‘키스링’이 올려지면서부터다. 국내산 우유버터와 충남서산 6쪽마늘을 이용한 마늘빵으로 빵 제조에 사용되는 ‘다층형 고리빵’ 기술을 이용한 게 키스링이다. 2013년 국내 특허로 출원됐다.

이 빵이 순식간에 ‘교황빵’으로 유명세를 타자, 롯데·신세계 등 유통 대기업이 이를 포착해 유사제품을 출시했다. SPC그룹의 파리바게트도 올해 2월 ‘마늘링’이란 이름으로 출시했다. 그러자 프로방스베이커리 김신학 대표는 “동네빵집에서 2년동안 개발비 2억원을 들여 만든 빵인데 대기업의 횡포로 희생양이 됐다”며 항의했다. 언론을 통해 이 사연이 알려지자 롯데·신세계 등은 관련 제품 판매 중단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파리바게트 측은 “(키스링 빵이) 보편적으로 제조되는 방법을 사용했을 뿐 특별하지 않다”며 지난 3월 특허무효심판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을 제기한 뒤 스스로 판매 중단 결정을 내렸지만 “특허무효심판 소송은 취하하지 않겠다”고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러자 윤 의원이 나섰다. 그가 선택한 방법은 국회의원 직위를 이용한 ‘호통’ 대신 '설득의 편지'였다.

윤 의원은 SPC 그룹의 권인태 파리크라상 대표이사에게 “파리바게트도 나름의 고충이 있겠지만 지금 특허권 분쟁은 시간과 비용만 소모될뿐 누가 이기더라도 실질적으로 도움될 것이 없는 싸움”이라며 “대기업인 파리바게트와 중소기업인 프로방스베이커리가 화해하고 상생의 방법을 찾는 게 가장 빠르고 현명한 해결책”이라는 내용을 담은 편지를 보냈다. 편지를 받은 권 대표가 윤 의원과 만나고 싶다는 뜻을 보내왔고, 결국 두 사람 간 회동 끝에 파리바게트는 무효청구 취하를 약속했다. 파리바게트는 내부 논의 끝에 지난달 26일 정식으로 무효청구 취하 절차를 완료했다. 윤 의원은 5일 “큰 갈등 없이 잘 마무리돼 정말 다행이고 기쁘다”며 “가맹점과의 약속도 중요할텐데 대승적 차원에서 취하 결정을 내려준 SPC에 감사인사를 전한다”고 말했다.

이지상 기자 ground@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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