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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끄러운 그리스 … 유럽 펀드 환매는 ‘글쎄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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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회사원 유모(34)씨는 그리스 관련 뉴스를 볼 때마다 유럽 펀드를 환매해야 하나 고민한다. 지난해 초부터 투자해 수익을 내고 있지만 그리스가 유로존을 탈퇴하면 수익률이 급락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유럽 펀드만의 문제가 아니다. 유씨는 “2010년 유럽 재정위기 땐 코스피 시장도 급락하지 않았느냐”며 “이번에도 그렇게 된다면 주식 관련 투자를 줄여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지난달 30일 그리스가 국제통화기금(IMF) 부채 상환 만기일을 넘기면서 사실상 국가부도 상태가 되자 투자자들의 불안도 커지고 있다. 하지만 시장 전문가들은 “안전 자산 위주로 투자 포트폴리오를 다시 짤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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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렉시트 가능성까지 제기되는 상황에서 전문가들이 이렇듯 ‘한가한’ 조언을 하는 데엔 이유가 있다. 금값은 시장의 위기 정도를 보여주는 바로미터다. 시장에 위기가 찾아오면 금값은 급등한다. 금은 생산량이 한정돼 있어 주식이나 돈처럼 위기 상황 때 급락해 휴지 조각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10년 유럽 재정위기 때 금값이 급등했던 건 그래서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지난달 25일 이후 소폭 상승했다 30일 이후엔 다시 하락하는 등 차분한 모습이다. 배성진 현대증권 연구원은 “시장이 이번 사태를 글로벌 금융위기나 유럽 재정위기 때처럼 큰 위기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2010년 유럽 재정위기와 이번 그리스 사태는 성격이 다르다는 분석도 있다. 재정위기 당시 유럽 국가들은 강도 높은 재정 정책을 폈다. 하지만 화폐가 유로화로 통일되면서 통화 정책이 이를 뒷받침해주지 못했고, 이게 국가 재정 신뢰도 하락으로 이어졌다. 박중제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2010년 위기가 유로존이라는 시스템의 문제였다면 이번 사태는 포퓰리즘이 낳은 정치적 문제”라고 설명했다. 유로그룹의 구제금융안을 받아들일 경우 치프라스 총리는 당선 당시 내세운 세금 감면 같은 공약을 지킬 수 없게 된다. 공약을 지키지 못하는 책임을 국민들에게 전가시키기 위해 국민투표를 제안했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이 유럽 펀드 환매를 권하지 않는 건 이같은 이유에서다. 김진영 NH투자증권 연구원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최근 연초 발표한 글로벌 경제성장 전망치를 수정하면서 유럽만 상향 조정했다”며 “그리스 사태가 안정되면 유로존의 경제성장률이 부각되면서 투자 심리가 회복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럽중앙은행(ECB)가 세계 중앙은행 중 가장 강력한 양적완화 정책을 펴고 있다는 점도 유럽 투자의 장점이다. 유럽 외 주식 시장에 투자하는 자산도 비중을 적극적으로 줄일 필요는 없어 보인다. 박중제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그리스 사태가 진정되면 미국 금리 인상 국면으로 전환될 것”이라며 “금리 인상기엔 채권보다는 주식 투자가 유망하다”고 조언했다.

 물론 5일로 예정된 국민투표에서 구제금융안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시장은 큰 충격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그리스 내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그럴 가능성은 커보이지 않는다. 구제금융 조건이 완화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많지만 유로존 탈퇴와 관련해선 반대 여론이 우세하기 때문이다.

  정선언 기자 jung.sune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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