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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송호근 칼럼

분노의 하이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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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대통령이 격노(激怒)했다. 의회의 옥죄기에 비답(批答)을 내린 통치자의 표정은 상기되었고 말은 떨렸다. 분노의 하이킥! 여의도 정치는 ‘난센스’ ‘구태’ ‘패권주의’로 호명되었고, 국회법 개정안을 고스란히 청와대로 배송한 유승민 원내대표는 ‘배신자’가 됐다. 정치판을 완전히 갈아엎어야 한다고도 했다. “국민을 중심에 두는 정치인들만이 존재할 수 있도록” 국민들이 ‘심판’해 줄 것을 발령했다. 분노의 거침없는 하이킥에 걷어차인 국회법 개정안은 쓩~ 하고 날아가 여의도 상공을 덮쳤다. 안 그래도 목이 타는 올여름, 한국 정치에 시원한 빗줄기를 기대하기는 틀렸다.

 박근혜 대통령의 입장에서 보면 그럴 만도 하다. 정권 초기부터 야당의 주특기인 발목잡기가 유감없이 발휘됐으니 말이다. 그렇지 않아도 거듭되는 악재에 휘청거린 정권에 올가미를 씌워 꼼짝 못하게 만든 장본인은 야당이었다. 정권 반환점이 코앞인데도 4대 개혁 중 어느 하나 시원하게 추진된 게 없다. 게다가 끼워팔기라니! 그토록 공들인 공무원연금 개혁에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가 따라붙었고, 관광진흥법에 최저임금법이 나란히 올려졌다. 3년째 동면하는 61개 민생법안에 대체 몇 개의 야당 법안이 더 얹힐까? 난센스란 바로 이 웃기는 빅딜을 지칭한다. 야당 법안을 받지 않으면 민생법안은 없다! 한국 정치를 지배하는 이 거부권 전략은 대통령의 울화를 돋우는 화병의 근원이고, 결국 대통령이 나 홀로 하이킥을 날리게 만드는 동맥경화였다.

 어디서 많이 본 장면이다. 노무현 정권이 그랬다.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은 정권 초기부터 거부권을 발동했다. 정권의 독주를 막는 데는 헌법이 최고였다. 한나라당이 거듭 내민 위헌 카드에 고(故) 노 대통령은 특유의 하이킥을 날렸다. ‘캬… 그놈의 헌법!’ 노사모의 환호성이 터졌다. 탄핵 정국 뒤엔 더 나갔다. ‘언론은 불량상품이다. 가차없이 고발해야 한다’고 했고, ‘세금폭탄’에 연정(聯政)까지 전선이 넓혀졌다. 여당이던 열린우리당은 전방위로 확장된 전선을 감당하지 못했다. 당·청 간 사전 협의는 물론 내각의 신중한 조율도 없었다. 나 홀로 하이킥은 결국 화를 자초한다. 우리당이 떨어져 나갔다. 당시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거부권 전략이 먹혔음을 알아차렸고, 대선가도가 열렸음을 직감했을 것이다. 2007년 경선캠프 호위무사가 유승민 의원이었는데 그는 이긴 적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필패(必敗)자’란 서러운 별명이 붙었다.

 오늘은 배신자다. 거부권을 첩첩이 쌓는 것으로 민주주의를 구축해 온 한국 정치에서 타협이라는 바늘구멍을 뚫는 정치인에게 하사한 아호(雅號)치곤 너무 무섭다. 박 대통령이 비탄한 심정으로 토로한 ‘국민’의 소멸과 ‘도덕정치’의 실종 역시 자신도 야당 시절 즐겨 활용했던 거부권 행사의 필연적 결과인데도 말이다. 국회와 청와대 사이, 여당과 야당 사이에 마치 부비트랩처럼 쳐진 지뢰를 요리조리 피하다 보면 어느새 민의는 달아나고 당리당략에 함몰된 정치만 남게 되는 게 현실임을 어쩌랴. 그 지뢰들을 누가 설치했는가? 박 대통령을 포함해 독재와 독주에 마음이 놓이지 않았던 국회의원들이다. 그 지뢰 때문에 일자리 창출이 안 되고 경제 살리기가 중단되었다고 호통쳐 봐야 참호에 처박힌 정치는 미동도 하지 않는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헌법에 명시된 고유권한이지만, 메르스와 가뭄에 국민 심사가 심란한 이때, 조용한 우회전략은 없었을까 해서 하는 말이다.

 막후 협상을 더 하고, 협의정치를 본격 발동하라는 뜻이다. 야당이 ‘기가 막힌 사유들로’ 딴죽을 걸고 정부를 무력화해도 밀사를 보내든, 읍소를 하든 조율 전선에 친히 나서라는 뜻이다. 거부권이 훨씬 더 조밀한 유럽에서는 ‘주고받는 정치’로 출구를 만든다. 선거의 여왕에게 번번이 패배한 야당에 뭔가를 줘야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지 않겠는가? 10년째 집권 중인 독일 총리 메르켈처럼 팔 걷어붙이고 뛰는 화통한 리더십을 보여야 야당의 떼쓰기 관행도 좀 누그러지고, 끼워팔기 항목도 줄어들 것이다. 구중궁궐에서 나 홀로 분노하면, 말은 위엄을 잃고 행동은 명분을 상실한다. 예상은 했지만 위험수위를 훨씬 넘은 대통령의 하이킥에 깜짝 놀란 김무성 대표가 내놓은 유예전략은 궁색하기 그지없고, 유승민 의원이 청와대를 향해 읊조린 참회의 말은 지극히 처량하다. “(박 대통령이) 저희에게 마음을 푸시고 마음을 열어주시길 기대한다”라니!

 여당 원내대표의 부복참회소(俯伏懺悔疏)가 아시아 제일의 민주주의를 자랑하는 한국에서 연출되리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선비의 나라 한국에서 통치자의 비답에 ‘부덕의 소치’는 행방불명이다. ‘만민의 유죄가 모두 나에게 있다. 이제 대각하니 심히 부끄러울 따름이다.’ 군주의 말은 늘 이렇게 시작했다. 민주주의라고 다르랴?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