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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주행차 해외·내수용 따로 개발해야할 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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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지난 25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일반도로에서 시범 주행을 시작한 구글 자율주행차. 국내에선 언제쯤 타볼 수 있을까. 현대차가 앞으로 5년간 2조원을 투자해 개발할 자율주행차도 소나타처럼 해외에 잘 수출될 수 있을까. 구글·애플 등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들이 경쟁적으로 자율주행차를 개발하며 ‘스마트카’ 산업을 주도하고 있지만, 국내에선 스마트카가 ‘그림의 떡’이 될 공산이 클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자율주행차의 핵심 기술에 쓰이는 국내 주파수가 국제표준과 다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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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마트카는 실시간으로 주변 사물들과 데이터를 주고받아야 하는 통신·IT 기기다. 자동차가 다른 자동차나 보행자와 부딪히지 않고 안전하게 주행하려면 도로 상황을 정확히 인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때 자동차와 다른 사물 간 V2X(Vehicle to everything) 통신용으로 할당된 국제표준 주파수는 5.9기가헤르츠(㎓)다. 미국·유럽·일본 등 대다수가 이 주파수를 채택했다. 하지만 국내에선 이 대역의 일부를 이동용 방송중계차가 쓰고 있다. 자율주행차 통신용으로는 5.835~5.855㎓만 할당됐다. 이 대역은 폭이 좁아 초대용량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처리하기엔 한계가 있다.

 이처럼 국제표준과 동떨어진 주파수 규제 때문에 국내 시장이 외딴 갈라파고스 섬으로 소외될 가능성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로선 국제용과 내수용 자율주행자를 따로 개발해야할 상황”이라며 “개발비용도 1.7배 가량 더 드는 것으로 추산된다”고 말했다. 국내 부품업체의 가격 경쟁력이 낮아진다.

 정부는 현재 추진 중인 지능형 교통시스템(C-ITS) 사업을 통해 주파수 회수를 검토 중이지만, 쉽지는 않다. 기존 사용자들이 이동할 다른 주파수를 마련하기 전까지는 자리를 내주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공학한림원 남상욱 박사는 “이런 기술규제는 기업들이 글로벌 환경에 대응해 빠르게 신기술을 개발해 시장에 뛰어들 의지를 꺾는다”고 말했다.

 한국공학한림원은 29일 서울 역삼동 한국기술센터에서 포럼을 열고 ▶자동차 ▶ICT 융합 ▶철강·화학 ▶중소기업 분야의 기술규제 사례를 공개했다. 그동안 정부가 규제 개혁을 외쳤지만 산업혁신을 막는 ‘기술에 대한 규제’에 대한 관심은 덜했다는 취지다.

 공학한림원에 따르면, 차세대 에너지기술로 주목받는 ESS(에너지저장시스템)도 기술규제의 벽에 가로막혀 있다. ESS를 활용하면 생산된 전력을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공급해 에너지 효율을 높일 수 있다. 그런데 현재는 ESS를 기업이나 연구소·건물주 등이 반드시 설치해야하는 비상발전원으로 쓸 수가 없다. 지난해말 산업부가 관련 규정을 고쳤지만, 다른 법령에서는 비상발전원으로 디젤발전기·가스 터빈 발전기만 쓰도록 국한했기 때문이다. ESS에 관련된 법령만 20개에 달해 규제 지뢰밭으로 불린다.

 산업계에선 ‘규제 없애기’와 ‘규제 예방하기’를 동시에 추진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이상훈 공학한림원 산업규제개혁위원장(KAIST 초빙교수)는 “산학연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옴부즈만을 통해 규제개선 과제를 적극 발굴하고, 사전 규제심사를 받지 않는 ‘의원입법 시스템’을 개선해 규제가 우후죽순으로 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수련 기자 park.sury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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