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께 끼친 고초 죄송" 盧대통령, 이기명씨에 공개 편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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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5일 오후 용인 땅 의혹의 중심 인물인 이기명(李基明)씨에게 보내는 편지를 청와대 홈페이지(president.go.kr)에 게재했다.

盧대통령은 A4 용지 5쪽반 분량의 이 편지에서 李씨에 대한 보도를 "'아니면 말고식'의혹 제기를 통해 대통령을 굴복시키려 하는 방법"이라고 규정해 파문이 일 전망이다.

'이기명 선생님께 올리는 글'이라는 제목의 이 편지에서 盧대통령은 "저는 요즘 선생님을 생각하면 죄스러운 마음을 추스를 수가 없다"고 서두를 뗐다.

"저를 만나지만 않았어도 '김삿갓 북한 방랑기'의 시나리오 작가로 노후를 편히 지내셨을 분이, 제가 대통령만 되지 않았어도 최소한 후배 언론인들에 의해 부도덕자, 이권 개입 의심자로 매도되는 일은 없었을 분이 일흔을 내다보는 연세에 당하고 계실 선생님의 고초를 생각하면 쉽게 잠을 이룰 수가 없다"는 것이다.

盧대통령은 용인 땅에 대해서도 회상 형식으로 언급했다. "기억나십니까, 선생님. 사무실에 돈이 없어 비서들이 기죽어 있을 때마다 저희들에게 용기를 주시기 위해 '나 용인에 조상에게 물려받은 금싸라기 땅 있어. 그것만 팔리면 우리 돈 걱정 안하고 정치할 수 있어'라고 말씀하셨다"는 내용이다.

이어 "그런 용인 땅이 최근 지역 개발의 여파로 부동산 개발업자들에게 매력적인 땅이 되고, 그래서 맺게 된 계약서 몇장 때문에 선생님이 갑자기 언론에 '대통령을 등에 업은 이권개입 의혹자'가 되어버렸다"고 했다.

편지에는 언론에 대한 비판도 담았다. 일단 "언론에 대한 음성적, 초법적 권한을 가지려, 쓰려 하지 않고 독자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반론권과 오보대응권을 갖고 바람직한 관계를 만들어가겠다"고 한 뒤 "이런 측면에서 반드시 지적되어야 할 언론의 잘못된 보도 방법이 바로 '아니면 말고식'의 의혹 제기로 대통령의 주변을 공격하는 방법"이라며 "그래서 대통령을 굴복시키려 하는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盧대통령은 "이러한 의혹 제기의 대상은 선생님이 마지막이었으면 좋겠다"면서 "하지만 선생님이 끝이라고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왜냐하면 부당한 권력에 제가 굴복하는 일은 어떠한 경우에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盧대통령은 "제 주변의 사람들은 단순한 의혹으로도 실명이 거론돼 인권이 너무나 쉽게 침해되고 있다"는 평소 주장을 되풀이하면서 "투철한 사명감으로 현실적인 어려움과 싸우고 있는 많은 양심적인 기자들이 자신이 무엇을 위해 기사를 쓰는지, 누구를 위해 기사를 쓰고 있는지가 명확하고 또 그 이유가 정당한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훈 기자 <choihoon@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xdrag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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