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맵 착수 후 전망] 중동평화 정착까진 산넘어 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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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에서 꿈은 이루어질 것인가. 평화는 올 수 있을까.

4일 중동평화회담에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총리는 오는 2005년까지 팔레스타인 독립국가를 창설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로드맵(단계별 평화정착안)의 착수를 공식 선언했다.


4일 요르단 남부 항구도시 아카바에서 열린 3자 중동평화회담에서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中)이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左)와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총리에게 중동평화 달성이라는 원대한 꿈을 양팔을 벌려 설명하고 있다. [아카바 AP=연합]

로드맵의 기본틀은 이스라엘은 점령한 영토를 양보하고, 팔레스타인은 테러를 중지해 이스라엘에 평화를 선사한다는 것이다. 로드맵의 착수로 길고 험한 마라톤이 시작됐다.

국제사회와 온건 중동국들은 이번 평화안에 은근한 기대를 걸고 있다. 기대는 몇가지 변화에 근거하고 있다.

우선 중재자의 파워가 달라졌다. 2000년 겨울 퇴임 직전 중동평화회담에 매달렸던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사라지는 인물'이었다면 2003년 6월의 부시는 파워로 보면 '욱일승천(旭日昇天)'의 지도자다.

미국에 적대적인 아랍민중에게 깔려 있는 반미정서는 전쟁으로 더욱 심해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중동의 역사를 끌어가는 지도자들에게 부시의 적극적 개입은 커다란 압력이 되고 있다. 미국을 외면하면 실익을 잃는다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부시의 '권유와 압력'에 샤론과 압바스 모두 로드맵을 수용했다.

2000년 말의 실패한 평화회담 이후 이.팔 양측은 피를 흘릴 대로 흘렸다. 거의 막다른 골목까지 왔다. 벼랑끝에 서서 양측은 손을 내밀고 있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더 많은 피를 흘린 팔레스타인이 대화의 명분을 갖도록 '투쟁가' 야세르 아라파트는 역사의 뒤편으로 밀려났다. 압바스는 일성으로 협상을 얘기하고 있다.

그러나 중동분쟁의 무게로 보면 이런 변화는 아직 가벼운 것일지 모른다. 비관론은 거기에 있다. 강경세력은 이런 변화를 거부한다. 회담 직후 하마스 등 팔레스타인 과격세력들은 무장투쟁을 지속할 것임을 선언했고 이스라엘 정착촌 대표들은 '불법 정착촌 철거'에 거세게 반발했다. 시리아 등 일부 아랍국도 로드맵 자체와 회담 결과가 이스라엘측에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3자회담 결과는 적잖은 갈등요인도 안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이스라엘은 유대인의 국가"라고 말해 '원래의 고향땅'인 이스라엘로 돌아가고 싶다는 팔레스타인 난민을 좌절시켰다. 샤론 총리는 "불법 정착촌 해체"를 선언했지만 대대적인 정착촌 철거는 없을 것이라고 시사했다. 압바스 총리는 테러 종식에 이스라엘의 정착촌 철거를 전제조건으로 달았다.

여기에 팔페스타인 난민 귀환, 서로 자신들의 수도라고 주장하는 예루살렘에 대한 타협, 국경 설정, 수자원 분배 등 여러 갈등 현안에 대한 협상이 모두 2004년 이후로 미뤄져 있다.

팔레스타인 국내 정치상황도 일종의 불발탄이다. 하마스.민족해방전선.알아크사순교단 등 과격단체들은 단순한 반이스라엘 테러집단이 아니다. 이들은 아라파트 자치정부 수반 혹은 압바스 총리와 치열한 정권다툼을 벌이고 있는 정치집단들이다.

이스라엘의 정치상황도 10년 전과 상당히 달라졌다. 강경파들이 수적으로 늘어 이.팔분쟁 해결에 또 다른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1990년대 초 공산권이 몰락한 이후 이스라엘로 이주한 1백만명 이상의 러시아계 유대인들은 이스라엘의 정치판도와 대팔레스타인 정책 방향을 바꾸었다.

집권 리쿠드당과의 연정에 참여하고 있는 이들은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해 초강경 입장을 보이고 있다.

서정민 중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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