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반의 음유시인, 슬픔마저 즐겁게 변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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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자 안다(Geza Anda, 1921~1976). 헝가리 태생 피아니스트. 말쑥한 차림으로 피아노 앞에 앉아 있는 그의 젊은 모습을 보노라면 연주가로 절정의 나이에 생을 마감한 것이 매우 애석하게 느껴진다. 더구나 그의 모차르트 연주를 두루 들은 뒤엔 더욱 그렇다. 이 글은 게자 안다에 대한 헌사(獻詞)로 쓰여졌다. 그는 내게 모차르트 음악의 즐거움, 그 진정한 가치를 되살려주었다. 아직 여전히 그 음악의 정체는 일부 미궁으로 남아있긴 하지만.

게자 안다라는 헝가리식 이름은 어쩐지 낯설어 그냥 지나치곤 했다. 눈에 이름이 자주 띄어도 그의 연주를 한번도 진지하게 들어보지 않았다. 사실은 모차르트 음악 자체도 오래 집중해서 들어본 기억이 별로 없다. 기분이 좋을 때 그 음악이 청량제 역할을 하긴 했지만 깊이 빠져들지는 않았다. 당장 듣고 싶은 음악이 없을 때 공백을 메우는 무난한 선택 메뉴였다. 모차르트 지지자들이 들으면 깜짝 놀랄 소리다. 그들은 작곡가를 닮아 유난히 극성스럽다. 그 대표적 인물이 스위스 신학자 칼 바르트.

다음으로 내가 아는 인물은 『하느님은 음악이시다』(분도출판사, 김문환 역)라는 짧은 명상집을 쓴 도미니크 수도회원 레기날드 링엔바하다. “…왜냐하면 모차르트 음악은 내용이기보다는 차라리 하나의 길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차르트 음악은 바흐의 음악과 달리 교서도 아니고 베토벤 음악과 달리 생활고백도 아니다.” 『하느님…』에서 링엔바하가 인용한 칼 바르트의 말이다. 나는 이 고명한 신학자의 말이 매우 부적절하다고 늘 생각해 왔다. 아마 바흐와 베토벤 음악을 즐겨 듣는 많은 이들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모차르트 음악을 한 계절 제법 열심히 들었던 전력이 딱 한차례 있긴 하다. 음악을 듣는 동안 재미있는 꿈도 꾸었다. 1993년 지중해여행 기간에 빠리의 대형 음반점 후낙에서 음반을 고르다가 프랑스 연주가인 쟝 베르나르 포미에 (71)가 연주한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와 협주곡 음반 세트를 구입했다. 신반이라 음질이 좋고 포미에의 간결한 연주가 좋아서 여름동안 줄곧 그 음반을 들었다.

거실에서 낮에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를 듣다가 깜박 잠들었는데 그라나다의 시인 가르시아 로르카의 기념관을 다시 찾는 장면이 연출되었다. 빠리에 가기 전 그라나다에 들러 로르카 기념관을 방문했던 것이다. 로르카가 아들을 안고 피아노 앞에 앉아있는 사진, 진열된 각종 시집들과 악보들을 보았다. 악보는 대부분 모차르트 곡이었다. 그 방문의 시간이 꿈에서 재현되었다. 후낙에서 모차르트를 고른 것도 로르카의 영향이었을 것이다.

모차르트와의 동행은 그 여름으로 끝났다. 포미에의 음반은 곧 잊혀졌다. 링엔바하의 『하느님은..…』에는 종교적 관점만 접어놓고 보면 모차르트 음악의 본질에 접근하는 좋은 말들이 다수 있다. “모차르는 내용-주장 혹은 사상-이 아니라 길이다” 란 말도 음미할 가치가 충분하다. “모차르트가 ‘가볍고 피상적이고 매혹적이지만 깊이는 별로 없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음직하다. 그의 음악은 자신을 우리에게 쉽게 열지 않는다. 그러나 그 근거는 음악 속에 있지 않다. 그것을 감히 받아들이고자 하지 않는 듣는 사람에게 원인이 있다.”

사실 모차르트 음악에 대해 해명하려 들면 자꾸 말을 더듬게 된다. 마땅한 어휘 하나도 떠오르지 않는다. 음악을 듣고 기쁘다거나 황홀감을 느꼈다는 게 고작이다. 내가 모차르트 음악에 아직 한번도 몰입하지 못한 이유 가운데 앞에 열거한 사항들이 포함될 것이다. 게자 안다의 연주를 듣고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우선 그의 연주가 어느 연주보다 큰 즐거움을 주고 희미하지만 모차르트 음악의 어떤 형태를 열어 보여준다. 그는 『하느님은…』 내용과도 얼마간 맞닿아 있다.

게자 안다는 모차르트를 초기에 연주하지 않고 음악 구조와 본질에 대해 깊은 연구를 거듭한 끝에 연주에 임했다. 그의 손을 거치면 모차르트 음악의 윤곽이 선명하게 보인다는 청자들도 있다. 적절한 톤으로 음 하나하나 의미를 살리면서 이어지는 정교한 연주가 그만큼 묘사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그의 데뷔무대(1941)를 이끌었던 푸르트뱅글러가 신인 연주가에게 ‘건반의 음유시인‘이란 호칭을 선사한 것은 이런 묘사력 때문일 것이다. 아주 빠른 진행에서도 그가 빚어내는 소리는 엉기지 않으며 아무리 작은 소리라도 모든 음표들이 연잎 위에 구르는 물방울처럼 반짝인다. 세세한 음표들을 흐트러짐 없이 살려내는 이 진귀한 연주야말로 ‘어느 경우에나, 슬픔을 나타낼 때마저 음악은 즐거움을 줘야 한다’는 모차르트의 지론을 그대로 실현한 연주가 아닐까.

“들으세요. C장조 콘체르토 21번 2악장을. D단조 콘체르토 20번도 갖고 계시다면 들으세요. 게자 안다의 녹음이면 좋을 것입니다.” 『하느님은…』에서는 친절하게 곡명과 연주자까지 안내하고 있다. 그의 연주가, 모차르트 피아노곡들이 자꾸 귀를 끌어당기고 있다. 그 연주로 나는 천국을 경험했다. 비록 지상의 천국이지만. 그 천국과 자주 만날 일이 기대가 된다.

송영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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