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훈범의 생각지도…

백두산 등정 소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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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범
이훈범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훈범
논설위원

백두산에 올랐다. 육당 최남선은 기행문 『백두산 근참기(覲參記)』에 이렇게 썼다. “이마를 스치는 것은 백두산 바람이요, 목을 축이는 것은 백두산 샘물이며, 갈고 심고 거두고 다듬는 것은 백두산 흙이다. 이렇게 떠나려 해도 떠날 수 없고, 떼려 해도 떼낼 수 없는 것이 백두산과 우리의 관계다.”

“단군시대의 백두산이 동방문화의 중심”이라는 그의 주장은 수난 속 민족과 나라에 대한 긍지를 되살리려는 과장이 분명할 터다. 그렇더라도 백두산이라는 이름이 다른 어떤 산보다 범상치 않게 다가오는 건 부인하기 어렵다. 환인의 아들 환웅이 내려와 신시(神市)를 건설한 신화가 살아 숨쉬는 우리 민족의 성산인 까닭이다.

 느낌은 『근참기』 그대론데 백두산이 아니다. 이곳 중국 사람들은 창바이산(長白山)이라 부른다. 그들 역시 천지(天池)라 부르는 산정호수 건너편에서만 산의 이름이 백두산이다. 정녕 산은 한 몸인데 그 가운데로 국경이 지나는 탓이다. 정확하게는 4분의 1만이 백두산이고 나머지는 모두 창바이산이다. 역시 백두산을 민족의 시원(始原)으로 중시하는 청나라 강희제와 조선 숙종이 1722년 백두산 정계비로 국경을 정했지만, 1909년 일제가 남만주 철도부설권의 대가로 백두산의 대부분을 청나라에 넘겼다. 그나마 지금의 백두산은 북한이 중국과 협상을 통해 되찾은 것이다.

 영산의 대부분이 중국 게 돼버린 상실감보다 조금 남은 백두산엔 아예 갈 수조차 없다는 무력감이 더 뼈저리다. 우리가 아는 백두 쪽으론 못 오르고 낯설고 말 설은 칭바이 쪽으로만 오를 수 있다는 게 서글프다. 시설만 조금 갖추면 서울에서 3시간이면 닿을 거리를 무리해서 꼬박 하루를 잡아야 하는 생고생은 그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백두라는 이름이 지도에서 사라지는 건 아닌지 하는 두려움도 점점 커진다. 우리 마음 속에 남는다 한들 얼마나 버틸까. 중국 정부가 창바이산을 중화 10대 명산 중 6위로 선정한 게 이미 13년 전이다. 창바이산 공항이 문 연 건 7년 전이다. 2012년 창바이산 관광지구 관광객 수는 167만 명, 관광수입은 860억원으로 2006년에 비해 각각 2.4배, 3.7배 늘었다.

수치가 미미하다고 우습게 보면 안 된다. 지금까지는 편의시설이 없었을 때 얘기다. 앞으로 창바이산을 국제음식거리, 동계스포츠센터, 박물관, 생태건강산업본부 등을 갖춘 국가생태여행경제시범구로 만들기 위해 5조1700억원을 투자한다는 게 중국 정부의 계획이다. 한창때 연간 10만 명 정도의 중국인 관광객을 받는 게 전부였던 북한의 백두산 관광이 설 자리가 어디 있겠나.

 민족의 성지를 돈으로 따지는 게 송구하나, 이웃 왕서방들만 좋은 일 시키는 게 배가 아파 하는 얘기다. 과거 김정일 국방위원장 때 합의됐던 백두산-한라산 교차관광을 서둘러 다시 논의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유엔 북한인권사무소의 서울 개소로 남북관계가 다시 한번 까칠해졌지만 어쨌거나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당시 삼지연 공항 포장 공사까지 했었지 않았나 말이다. 게다가 제주도는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외가다. 제주에서 회의가 있을 경우 참가 경쟁이 벌어질 만큼 북한 엘리트층들이 가고 싶어하는 곳이다. 남북이 서로 백두산과 제주의 관심이 남다를 테니 우리가 제안하기에 달렸다. 교차가 어려우면 백두산 문만 열어도 된다.

 핵이나 인권도 중요하지만 보다 접근하기 쉬운 문제로 대화의 물꼬를 터야 한다는 덴 많은 이들의 의견이 일치한다. 백두산 관광이 거기에 딱 들어맞는다. 관광수입으로 북한 경제에 숨통이 트일 수 있고, 민족의 성산을 지킨다는 명분도 있다. 백두산의 화산폭발 가능성도 제기되는 상황에서 자연재해 연구는 물론 기상 관측, 생태계 공동조사도 더불어 실현될 수 있다. 무엇보다 소중한 한 가지 덤이 있다. 창바이산에선 어려운 천지 물에 손 담가보기가 가능해진다는 거다.

이훈범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