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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NSA 감청 … 올랑드 항의에 오바마 “다시는 안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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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거의 10년간 미국은 프랑스 대통령을 엿들었다.”

 23일(현지시간) 프랑스 탐사보도 전문매체인 ‘메디아파르’의 주장이다. 미국 국가안보국(NSA)이 자크 시라크 대통령과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 그리고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까지 세 명의 프랑스 대통령을 감청했다는 폭로 전문 웹사이트인 위키리크스를 인용하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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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키리크스는 일부 전화번호 내역과 함께 2006년부터 2012년까지 일급보안 꼬리표가 붙은 NSA의 문건 5종을 공개했다. 문건엔 대단히 예민한 정보란 의미의 ‘G’는 물론 ‘변칙적인(unconventional)’이란 표기도 있다. 감청으로 얻은 정보란 의미다. 여기엔 다수의 대통령궁 관리들은 물론 대통령의 휴대전화도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위키리크스의 설립자인 줄리안 어산지는 성명에서 “프랑스 국민은 자신들이 선출한 지도자가 이른바 우방의 적대적 감시 대상이었다는 점을 알 권리가 있다”며 “가까운 장래에 더 많이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건엔 2012년 그렉시트(Grexit· 그리스의 유럽연합 탈퇴) 가능성을 두고 올랑드 대통령이 비밀 회의를 열도록 지시했다는 내용이 있다. 당시 독일 야당인 사민당의 지그마어 가브리엘 당수와 비밀 접촉하도록 재가하기도 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에겐 이런 내용을 알리지 않았다. 2006년 시라크 대통령은 테르제 로에드-라르센 당시 유엔 중동특사를 유엔 사무부총장으로 밀었다는 내용, 그리고 사르코지 대통령이 2008년 세계 경제위기 와중에 자신이 유럽을 구할 유일한 지도자라고 느꼈고 2011년 미국을 배제한 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을 중재하려 했다는 얘기도 담겼다. <그래픽 참조>

 이 같은 폭로에 대해 네드 프라이스 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대변인은 “미국 정부는 구체적인 폭로 내용에 대해 언급하지 않겠다”면서 “일반적으로 우리는 구체적이고 유효한 국가안보 목적이 아닌 경우에는 외국을 대상으로 어떠한 정보 감시 활동도 수행하지 않으며 이는 일반 시민은 물론 세계 지도자들에게도 적용된다”고 말했다.

 이에 크리스틴 흐라픈슨 위키리크스 대변인은 이번에 공개한 문건들이 신뢰할 만한 내용들이라고 맞섰다. 하지만 NSA의 전직 요원 에드워드 스노든이 제공한 문건인지 등 입수 과정에 대해선 공개하지 않았다.

 올랑드 대통령은 24일 오전 긴급 안보회의부터 소집했다. 그러곤 “프랑스는 자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어떤 행위도 용납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대통령궁도 “미국은 프랑스 지도자에 대한 첩보 행위를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주불 미국 대사도 초치했다.

 올랑드 대통령은 이날 오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받았다. 오바마 대통령은 통화에서 “동맹국 사이에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며 감청 중단을 약속했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양국 대통령은 정보 분야에서 동맹국 간 준수해야 할 원칙에 대해 논의했다고 프랑스 대통령궁이 밝혔다. 프랑스 정부는 이날 주불 미국대사도 초치했다.

 프랑스 정가는 들고 일어났다. 사르코지 정부에서 국방·외무 장관을 지낸 미셸 알리오마리는 “미국이 대화를 감청할 수 있다는 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며 “그러나 그게 우방 사이 신뢰를 금 가게 하는 문제란 점 또한 분명하다”고 말했다. 프랑스 사회당의 장자크 우르보아 의원은 “미국이 (주변국을) 협력자가 아닌 공격 대상이나 봉건시대 가신쯤으로 여기고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런던=고정애 특파원 ock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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