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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메르스 극복 위해 ‘애국적 소비’까지 고민할 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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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최근 한국 경제는 슬리퍼리 슬로프(slippery slope·미끄러운 비탈길)에 서 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정부에 올 하반기 경제정책 과제(3대 부문 10개 과제)를 건의하며 현재의 위태로운 경제상황을 빗대어 한 말이다. 슬리퍼리 슬로프는 ‘일단 들어서면 중단할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닫는 길’을 말한다. 메르스 사태로 인한 내수 침체와 가속화되는 수출부진, 여기에다 글로벌 경기 침체와 엔저 및 그렉시트(그리스 국가부도) 우려 등 외부 여건도 만만찮다. 한마디로 내우외환(內憂外患)이다.

 재계의 주장처럼 구조개혁을 통한 경제체질의 개선 등 근본적 대책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백화점·대형마트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5% 넘게 역신장하고 전통시장 매출이 절반 이하로 떨어지고, 수학여행과 각종 행사 취소 등으로 지역 경제가 파탄에 이른 작금의 메르스 사태는 단기적 처방이 우선돼야 한다. 경제는 심리라고 한다. 지금 상태로는 정부의 어떤 정책도 통하기 어렵다. 구조개혁에 앞서 가계는 의식적으로 소비를 늘리고, 기업은 고용 및 판촉활동에 나서는 등 경제심리를 되살리는 경제 주체들의 전향적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

 우리는 1997년 외환위기 당시 금 모으기라는 ‘애국적 경제활동’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당시 금 모으기는 시장원리도 아니고 손익 면에선 마이너스였지만, 이 운동을 통해 ‘우리 손으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의지를 한데 모아 외환위기를 빠르게 극복하는 심리적 원동력이 됐다. 2001년 9·11 테러로 문을 닫았던 미국 뉴욕 증시가 일주일 만에 재개장할 당시 증권가 애널리스트들은 다우지수가 곧바로 10% 이상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그날 뉴욕 증시 하락 폭은 3% 안팎에 그쳤다. 개미투자자들이 ‘애국적 주식투자’ 캠페인에 호응해 매도를 자제한 덕분이었다. 이로써 우려했던 금융혼란은 일어나지 않았다.

 우리 사회가 다시 ‘애국적 경제활동’을 고민해야 하는 이유도 이런 기억 때문이다. 현재 경기경찰청이 메르스로 어려움에 빠진 평택지역 농산물 사주기에 나섰고, 새누리당도 메르스 피해지역 특산물 사주기 운동을 벌인다.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더 해야 한다. 피해지역 돕기에서 더 나아가 전반적이고 적극적인 소비활동으로 시장활력을 되살려야 한다. 이를 위해 중앙일보는 지난 23일 ‘트라우마형 내수 침체’를 살리기 위한 방안으로 ▶대통령의 경제심리 자극 ▶개별소비세 한시적 인하 ▶기업소비 촉진 ▶국내휴가 장려 ▶한국판 그랜드세일 ▶소비 촉진형 대형 이벤트 ▶재난 인프라 투자 등 7대 제언을 한 바 있다. 관광·외식 등 피해업종에 대한 부가가치세 납부 유예, 개별소비세 완화, 문화접대비 한도 확대 등의 맞춤형 정책지원을 요청한 대한상의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메르스는 앞으로도 지루한 국지전이 예상된다. 메르스로 타격받은 우리 경제의 건강을 회복시키려면 정부의 추가경정예산 편성만으론 힘에 부친다. 민·관·기업이 모두 손을 맞잡아야 한다. 치열한 경제심리 침체 방역을 전방위적으로 펼쳐 우리 공동체의 면역력을 끌어올려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