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식의 야구노트] 야구대표팀 감독 자리 또 ‘폭탄돌리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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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김인식(左), 선동열(右)

독이 든 성배(poisoned chalice). 지난 2004년 로이터 통신은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을 이렇게 표현했다. 성적이 좋으면 거스 히딩크(69)처럼 국민적 영웅으로 추앙받지만, 반대 경우엔 욕 먹고 쫓겨나기 때문이다. 국가대항전이 자주 열리고 많은 국민의 사랑을 받는 한국 축구 대표팀 감독의 운명이다.

 야구 대표팀 감독은 어떨까. 조금 과장하자면 ‘독이 든 소주잔’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다. 잘해야 본전, 못하면 망신이란 거다.

 야구 국가대항전 ‘프리미어12’ 대표팀 감독 선임이 늦어지고 있다. 한국을 비롯해 미국·일본·쿠바·도미니카공화국 등 국제야구연맹(IBAF) 상위 12개국이 참가해 11월 8일부터 일본·대만에서 제1회 대회를 연다. 일본은 올해 초 고쿠보 히로키(44)를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했고, 대만도 최근 궈타이위안(53) 감독을 선택했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지난 9일 이사회를 열었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KBO 규약에 따르면 2014년 우승한 류중일(52) 삼성 감독이 1순위, 준우승한 염경엽(47) 넥센 감독이 2순위로 선임돼야 한다. 그러나 류 감독은 “포스트시즌이 11월 초에 끝난다. 대회를 준비하기엔 무리”라며 고사했다. 염 감독도 미온적이다.

 늘 그랬다. 2006·2009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김인식(68·당시 한화) 감독,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김경문(57·당시 두산) 감독을 선임할 때도 KBO가 간곡하게 부탁해야 했다. 두 감독도 소속팀에 전념해야 할 처지였지만 대표팀을 모른 척 하지 않았다.

 대표팀은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2009년 WBC 준우승을 차지했다. 그 열기가 프로야구로 이어져 2008년부터 경기당 평균 관중 1만명을 넘어섰다. 또 9구단 NC와 10구단 kt가 창단했다. 한국 야구의 국제 경쟁력이 내수시장을 키웠다.

 이후에도 대표팀 감독 선임은 늘 고민이었다. 논란 끝에 전년도 우승 감독에게 대표팀을 맡기는 규정을 신설했고, 2010 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 조범현(55) 당시 KIA 감독이 금메달을 이끌었다. 2013 WBC 1라운드에서 탈락한 류 감독은 2014 인천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따내 명예를 회복한 뒤 대표팀을 더는 맡고 싶어하지 않는 것 같다.

 축구 대표팀 감독은 부담이 큰 만큼 인기와 권력을 가진다. 울리 슈틸리케(61) 감독은 4년 총액 30억원(추정)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야구 대표팀은 전임(專任) 감독이 아닌 데다 단기전에서 패하면 만회할 시간도 없다. 현역 감독들이 느끼는 부담감도 이해는 간다.

 그러나 대표팀 감독을 독배로만 보는 건 편협한 생각이다. 프로야구가 아무리 자국리그 위주로 운영된다고 해도 국제대회가 주는 확장성을 무시할 수 없다. 그걸 WBC와 올림픽에서 충분히 느꼈다. 한국보다 기반이 탄탄한 미국과 일본도 ‘야구의 세계화’를 위해 애쓰고 있다.

 야구 대표팀 감독의 위상도 높일 때가 됐다. 전임제를 도입해 김인식 감독이나 선동열(52) 전 KIA 감독 등에게 지휘봉을 맡기고 예우하는 방법도 생각해야 한다.

 국가대표가 되는 건 개인의 영광 이상이다. 종목의 모든 인적·물적 지원을 받아 나라를 대표해 뛰는 것이다. 지금처럼 감독 선임부터 ‘폭탄 돌리기’를 한다면 팬들의 응원을 받기 어렵다.

김식 기자 see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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