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회 「한국 건축의 미」학술강연-"한국고가 유교생활과 밀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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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현존하는 우리나라 상류 고가옥은 그 구조에 있어 유교적 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한국박물관회가 30일 마련한 「한국건축의 미」학술강연회에서 김광언 교수(인하대·문화인류학)는 『우리네 살림집의 이모저모』를 통해 이같이 주장했다.
상류가옥구조에 영향을 미친 유교의 대표적 덕목은 조상숭배·남녀유별·장유유서.
조상숭배관념은 조상의 위패를 모셔두는 사당으로 표현되었는데 상류가옥에서는 고려말기인 14세기 중엽부터, 조선조에서는 건국초기부터 이의 건립을 강력히 권장하였다.
집을 지을때는 사당터를 제일 먼저 정하여 다른 건물보다 높이 세웠고 주위에는 담을 두르고 출입문을 달았다. 가옥의 좌향이 동남향인 경우 사당은 안채뒤인 동북쪽에 두었고 사당과 사랑채는 같은 방향에 배치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으며 대개 3칸으로 지었다.
사당채의 중앙문으로는 종손만 드나들수 있으며 다른 사람은 좌우의 옆문을 이용토록해 제사를 받드는 종손의 권위를 높여주었다.
남녀유별의 덕목은 다른 어떤 것보다도 상류가옥건축에 큰 영향을 끼쳐 한집안에서도 남자의 공간과 여자의 공간이 확연히 구별되었다. 사랑채를 중심한 사당채와 행랑채는 남성의 공간이고 안채와 별당채는 여성의 공간으로 이 두 공간 사이의 유일한 통로는 작은 중문이었다.
건물을 배치할때도 여성이 기거하는 건물들은 안쪽 깊숙한 곳에, 남성의 공간은 바깥쪽에 두는 것을 이상으로 삼아 남향집인 경우 남성공간은 동쪽 내지 동남쪽, 여성공간은 북쪽 내지 서북쪽에 두었다.
외간남자는 주인의 허락 없이는 누구도 안채에 들어갈 수 없었으며 시선조차도 막을수 있게끔 문안쪽에 널벽이나 화초담을 쳐두었다.
그러나 후사를 위해 며느리방과 젊은 주인의 방은 최단거리에 배치했으며 경우에 따라 며느리방에 퇴를 불여 안채 대청의 문을 건후에는 이리로 드나들도록 했다.
장유유서의 관념은 사랑채의 경우 노인이 기거하는 큰사랑은 2칸임에 비해 장년의 아들방인 작은 사랑방은 대체로 1칸에 지나지 않았다.
또 아버지 방에는 값진 문방구를 비롯해 호사스런 가구룰 배치하는 반면, 아들방에는 이런 것이 없다. <홍근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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