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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기난사 땐 헛소문…'집단지성'과 '카더라'에 낀 SNS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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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정부는 밝히지 마라. 정부만 빼고 다 안다.’

 얼마 전 한 트위터리안이 말했다. 최근 SNS 분위기가 이렇다. 중동에서 왔다는 정체불명의 전염병에 대해 정부가 제공하는 정보는 한정적이었다. 네티즌들은 SNS를 통해 자급자족으로 정보를 모았다. 어떤 것이 진짜이고, 또 가짜인지는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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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단지성’과 ‘카더라’ 사이. 그 어딘가에 SNS가 있다. 특히 나라 전체가 질병이나 자연재해, 또는 큰 사건·사고로 홍역을 앓고 있을 때 SNS는 둘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한다.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혼란에 직면한 요즘 상황이다. SNS에서는 ‘받은 글’이라는 말머리를 단 정보들이 무수히 떠다닌다. ‘받은 글’이기 때문에 전해지는 정보의 스펙트럼은 한없이 넓고 ‘(남에게) 받은 글’이기 때문에 그만큼 책임감에서는 자유롭다. 현택수 한국사회문제연구원장은 “모든 게 불확실한 상황에서 ‘이런 게 있다더라’ 유의 글을 남기고, 지인 또는 불특정 다수와 소통하며 정보 부재의 불안감을 해소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빅데이터 분석 업체 다음소프트의 조사 결과를 보면 SNS상에서 사람들은 최근 한 달간 ‘메르스’와 함께 환자·병원·확진·감염 등의 단어를 자주 사용했다. ‘어느 병원에서 확진 환자가 얼마나 나왔고, 감염 경로는 어딘지’ 등의 정보를 교류하려는 흔적이다. 글의 유형은 다양했다. 제일 흔한 건 ‘관계자’형이다. ‘OO병원 관계자인데, 메르스 의심 환자 1명 들어왔습니다’ 등 병원 관계자로 추정되는 글을 받은 경우다. ‘코 밑에 바세린을 바르세요’ ‘공진단이 특효약입니다’ 등 민간요법을 전수하는 ‘받은 글’도 있다. ‘방탄복 입은 사람들이 환자 데리고 가는 걸 봤다’는 ‘목격자형’, ‘현직 의사가 말한 메르스 진실’ 등 ‘전문가형’ 정보도 활개를 쳤다.

 일단 정부는 칼을 빼든 모양새다. 강신명 경찰청장은 “공공 질서에 심대한 악영향을 끼치는 허위 사실 유포 행위에 대해 강력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특정 병원에 메르스 환자가 입원 중이다’ 등 허위 사실을 유포한 이들을 입건해 조사하기도 했다. 실제로 루머는 차고 넘쳤다. 특히 ‘공진단이 메르스에 좋다’는 글은 한 한의원이 처음 작성한 것이었는데, 전국의사총연합이 나서서 보건복지부에 행정처분을 요청하기도 했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 때는 배 안에 남아 있는 학생이 쓴 걸로 추정되는 글이 돌아다녔다. 지난달 예비군 총기난사 사고 후에는 현장에 있던 사람이라며 사고 상황을 실감나게 묘사한 글이 올라왔다. SNS상의 유언비어가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외국의 상황도 비슷하다. 2012년 미국 동부 지역을 허리케인 샌디가 강타했을 때도 SNS에서는 수많은 정보가 오갔다. 하지만 ‘뉴욕증권거래소 건물이 침수됐다’ 등 근거 없는 이야기가 떠돌기도 했다. 당시 뉴욕시는 “이 같은 행위는 군중이 모여 있는 극장에 ‘불이야’ 하고 외치는 것과 같다”고 표현했다.

 송경재 경희대 인류사회재건연구원 교수는 “SNS를 통해 개인미디어라는 개념이 생겨났고, 이들은 기존의 정부나 언론이 독점적으로 해오던 정보 유통 방식을 불신한다”며 “그러다 보니 마치 ‘증권가 찌라시’처럼 SNS 정보가 열 개 중에 한 개라도 맞으면 열광하게 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단죄만 하기엔 아쉬운 측면이 있다. 올해 초 임신한 아내에게 줄 크림빵을 들고 귀가하던 남성이 뺑소니 차량에 치여 숨진 사고가 발생하자 네티즌들은 이 안타까운 사연을 SNS에 퍼나르며 용의자를 검거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의도였든, 의도치 않았든 정부의 행동을 촉구하기도 한다. 메르스 환자가 방문한 병원명들이 SNS에 떠다니자 정부는 지난 7일 ‘병원 비공개’ 방침을 철회하고 메르스 환자 접촉병원 리스트를 공개했다. 첫 환자 발생 18일 만이었다.

 정부의 정보 공개 전 네티즌들은 이미 ‘메르스 확산 지도’를 만들었다. 지난 3일 박순영 데이터스퀘어 대표와 이두희 멋쟁이사자처럼 대표 등이 페이스북 페이지에 개설한 사이트다. 전국 지도에 메르스 환자가 확진 판정을 받았거나 격리된 병원의 위치를 표시해 놓았다. 한 네티즌이 루머성 정보를 제공했을 경우 다른 네티즌이 신고할 수 있도록 보완장치도 만들었다. 철저한 게이트키핑 절차를 거쳐 만든 메르스 지도는 뒤늦게 보건당국이 공개한 병원 리스트와 상당 부분 일치했다. 이 사이트는 지난 10일 정부가 정보공개 쪽으로 방침을 굳히자 서비스를 종료했다. 사이트 측은 “7일간 약 340여 건의 제보를 처리했으며 500만 명이 방문했다”고 밝혔다. 트위터는 메르스 관련 계정을 한 데 모은 ‘메르스실시간정보(@mersKRnow)를 개설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보건당국과 각 지자체에서도 이제 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노명우 아주대(사회학) 교수는 “유언비어라는 것이 소규모의 사람들이 공유할 때는 정말 유언비어가 되지만, SNS와 같은 공론의 장으로 나오면 더 이상 그 기능을 할 수 없게 된다” 고 말했다. 메르스 관련 괴담이 겉잡을 수 없이 퍼지면서 온라인에서는 실명을 공개한 전문가들의 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허대석 서울대 의대 내과학교실 교수는 블로그에 ‘2009년 신종플루의 교훈과 메르스’라는 글을 올려 전문가로서 자신의 소견을 밝히기도 했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은 홈페이지에 ‘메르스 상황판’을 만들어 의료 현장에서 취합된 정보를 업데이트 하고 있다. ‘과도한 불안감은 자제하자’는 글도 SNS에서 점차 확산되는 추세다.

 “잘 쓰면 좋은 거고, 조심해야 하는 부분도 있는 거고…. 50대 50이죠.” SNS의 가능성에 대해 묻자 전문가들의 첫마디는 대부분 이랬다. ‘공자왈 맹자왈’ 같은 소리처럼 들리지만 그만큼 함부로 재단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현택수 교수는 “SNS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SNS 내에서 해결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며 “정부와 언론이 제대로 된 정보만 전달한다면 취사선택은 국민이 알아서 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송경재 교수는 “가장 이상적인 건 다수가 만들어내는 집합적 지성과 전문가의 지성이 만났을 때인데, 대표적인 예가 ‘위키피디아’”라며 “아직 한국 SNS에는 그런 모델이 없어 아쉽다”고 말했다.

홍상지 기자 hongsam@joongang.co.kr

[S BOX] 집단지성 모델은 개미, 대표 사례는 ‘위키피디아’

‘집단지성(Collective Intelligence)’이라는 개념은 미국의 곤충학자 윌리엄 모턴 휠러(William Morton Wheeler)가 처음 제시했다. 개미가 공동체로 협업해 거대한 개미집을 만들어내는 걸 본 휠러는 그들이 개체로서는 미미하지만 모이면 높은 지능 체계를 형성한다고 설명했다. 이를 사회학자 피에르 레비(Pierre Levy)가 사이버 공간에 처음 대입했다.

 사이버공간은 개인 간 소통을 무한대로 확장시켰 다. 이 공간을 ‘집단지성’으로 활용한 대표적인 예가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피디아다. 불특정 다수의 네티즌들에게 아이디어와 재원을 구하는 크라우드소싱, 소프트웨어 프로그램 코드를 무상으로 공개하고 피드백을 받는 오픈소스 등도 집단지성에 대한 믿음 위에 자리 잡고 있다.

 집단지성으로 포장했지만 사실상 ‘포퓰리즘’으로 흘러버린 사례도 적지 않다. 사이버공간이 정치적 색깔을 달리하는 진영으로 쪼개져 있는 경우엔 더 심하다. 제 입맛에 맞는 정보만 받아들이며 ‘확증 편향’을 키워 간다. 올 초 한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연말정산 세금 폭탄’ 논란도 잘못된 여론에 밀려 면세자 비중만 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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