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비과학적 과잉 대응 사라져야 메르스에 이긴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한국의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확산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방한 중인 세계보건기구(WHO) 합동평가단이 학교 휴업 조치의 해제를 권유한 것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비과학적인 불안에 휩쓸릴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평가단은 지난 10일 한국 정부에 대한 권고문에서 “한국이나 다른 지역에서 학교가 메르스 전염에 관련돼 있지 않기 때문에 수업 재개를 고려하기 바란다”고 밝혔다. 학교가 한국은 물론 다른 나라에서도 메르스 바이러스의 전파와 관련이 있었던 적이 없었다는 게 WHO 조사단이 밝힌 의학적·과학적 근거다.

 지난 7일 경기도교육청과 서울시교육청이 휴업을 결정할 때도 보건복지부는 의학적으로 옳지 않고 불필요한 불안감을 자극할 수 있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그럼에도 교육부는 메르스 확산 방지를 위한다며 학교장 자율로 학교·유치원 등이 휴업할 수 있도록 했다. 학교 휴업이 메르스 확산을 방지할 수 있다는 의학적·과학적 근거를 제시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막연한 불안감만으로 휴업을 결정한 게 아닌지 의문을 품는 사람이 적지 않다.

 게다가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지난 7일 강남·서초구의 유치원과 초등학교에 일괄 휴업 명령을 내린 데 이어 WHO의 수업 재개 권유가 나온 10일 일괄 휴업 조치를 12일까지로 연장했다. 이뿐만 아니고 강동·송파·강서·양천구의 학교에도 휴업을 강력히 권고하며 한걸음 더 나아갔다. 당국은 불안해하는 학부모들이 휴업을 요청하는 상황이라며 학생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선제 조치로 휴업을 결정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학생들의 생명은 비전문가인 학부모 여론이 아니라 전문가의 의학적·과학적 대응으로 지킬 수 있다. 오히려 전문가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학부모와 학생을 적극적으로 설득해 학교의 문을 여는 게 더욱 합리적일 것이다. 자칫 이번 사태가 교육 당국이 의학적·과학적 지식을 무시하고 여론에 떠밀려 학교 보건의 주요 의제를 비합리적으로 결정한 사례로 기록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교육 당국은 의학적·과학적 이유가 분명하지 않은 학교 휴업을 중지하고 WHO의 권고대로 각급 학교에 수업 재개를 권유해야 한다. 전문가들과 상의해 학교가 감염원이나 경로로 확인되지 않는 한 앞으로 휴업하지 않는다는 명확한 기준과 원칙도 세워야 한다. 이 과정에서 메르스 대책상황실의 자문의사를 비롯한 전문가의 도움을 얻어 학부모를 적극적으로 설득해야 한다. 막연한 두려움보다 합리적인 정보 제공이 메르스를 이기는 힘을 제공할 것이다.

 메르스 앞에서 막연히 불안해하는 학부모의 심리도 이해할 수는 있다. 하지만 사회적인 파장이 큰 조치는 합리적으로 의심은 하되 비과학적 과잉 대응으로 가지 않도록 균형을 취해야 한다. 그래야 메르스로 인한 사회적 에너지 낭비를 최소화할 수 있지 않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