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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고리1호기 폐쇄 결정, 안전한 폐로 기술 확보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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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국가에너지위원회가 국내 최초 원자력발전소 고리1호기에 대해 영구정지(폐로)를 권고했다. 최종 결정은 한국수력원자력 이사회에서 하지만 한수원 측도 위원회의 권고를 따른다는 입장이다. 이로써 1978년 첫 운행에 들어간 이래 1차 수명연장을 거쳐 37년간 운행했던 고리1호기는 2017년 6월 폐로단계로 접어들게 된다.

 이번 결정은 환영과 우려를 동시에 자아낸다. 원전은 기술적 안전과 주민들의 심리적 안정이 모두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일단 노후 원전에 대한 선제적 폐로 결정으로 심리적 안정의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 사용 후 핵연료 냉각, 원자로 해체작업 및 부지복원작업 등 15년 이상 걸리는 폐로 기술을 확보할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도 환영할 만하다. 앞으로 50년간 200조원 규모가 될 세계 원전 폐로 시장에서 기술과 경험을 쌓는 효과가 기대된다.

 다만 폐로 권고가 합리적인 소통과정을 거치지 못하고 지역 여론에 떠밀리듯 결정된 과정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번 결정은 경제성이나 기술적 문제보다 안전을 우려하는 지역민심에 따른 측면이 강하다. 애초 산업자원부와 한수원은 안전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하고 2차 수명 연장을 추진키로 했다. 그러나 양산·창원 시의회와 경남도의회 등이 고리1호기 재연장 반대 결의안을 채택하고, 지역 국회의원과 환경단체들도 재연장 반대에 나서면서 결국 폐로로 방향을 틀었다.

 주요 정책이 합리적이고 기술적인 합의가 아닌 지역 여론에 떠밀리듯 결정된 과정은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길 수 있다. 특히 우리는 2025년까지 고리 2호기 등 설계수명 종료를 앞둔 5기의 원전 수명연장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길게 보면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원전을 통한 전력공급 확대는 불가피한 상황이다. 하지만 원전에 대한 불안감 역시 원천적으로 줄어들지 않는 게 사실이다. 앞으로 마주칠 이런 갈등을 관리하려면 이번 기회에 원전 재가동 여부를 객관적으로 판정할 합리적 기준을 마련하기 위한 정책적 노력이 아쉬웠다. 이제 남은 것은 당국이 고리 1호기 폐로에 따른 안전에 만전을 기하는 동시에 향후 계속될 원전 논란에서 합리적 의사결정에 이르는 소통의 기술을 개발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