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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정부 100일] 노무현 정부 '시스템 정치' 내세우지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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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노무현 정부는 '시스템 정치'를 추구한다. 인치(人治)의 반대개념이다.

제왕적 대통령을 답습하지 않고, 권력 2인자의 등장을 원천적으로 불허하겠다는 취지다. 이를 위해 盧대통령은 청와대와 내각, 권력기관의 운영 방식을 바꿨다.

청와대 조직을 대통령 고유업무와 정책업무로 나눠 문희상 비서실장.이정우(李廷雨)정책실장의 실질적 투톱체제로 개편했다. 가장 공을 들인 분야는 인사에서 대통령을 보좌하는 팀을 정비한 것으로 추천.심사.검증 등의 5단계로 인사시스템을 마련했다. 특정인 독주가 불가능하도록 견제.균형장치를 갖춘 것이 요체다.

내각에는 자율과 분권을 약속했다. 대통령의 뜻 하나에 정책결정이 좌우되는 1인 집중식 국정운영에서 탈피하기 위한 것이다. 자신은 대통령 프로젝트에 전념하고 고건(高建)총리에게 명실상부한 내각 통할권을 부여하겠다고 했다.

장관들에겐 사실상 최소 임기를 보장하고, 재량의 폭을 넓히기로 했다. 청와대 수석비서관이 부처를 관장하지 않고 장관이 대통령과 직접 만나 협의토록 했다.

최근 NEIS파문으로 윤덕홍(尹德弘)교육부총리에 대한 사퇴 요구가 거세지만 盧대통령이 일축하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盧대통령은 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이 초기에 군 인사개혁에 나선 것처럼 국정원과 검찰로 대별되는 권력기관의 개혁을 밀어붙였다.

5년 전 김대중 전 대통령은 취임 1백일 기자회견에서 정계개편을 주창했으나 盧대통령은 당정분리 원칙에 따라 정치불개입, 불간섭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1백일 동안 두산중공업.철도.화물연대.NEIS.공무원노조.새만금 문제 등이 벌어졌고 이때마다 새 정부의 시스템은 허약하게 무너지곤 했다. 사회적 갈등 현안이 조정되는 과정에서 총리의 역할은 미흡했다.

盧대통령이 KBS 노조와 직접 대화한 이후 부처 실무진의 협상능력이 떨어지는 현상도 나타났다. 결국 시스템이 오작동하거나 청와대가 개입해 정치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회귀현상이 다시 일반화되는 양상이다.

권해수(權海秀.한성대 교수)경실련 정부개혁위원장은 특히 "조직화된 이익집단의 압력에 정부가 너무 쉽게 굴복한 것"을 문제점으로 꼽았다.

시스템을 구성하는 장관, 청와대 참모진이 '강팀'이 아니란 지적도 있다. 한국행정연구원 서원석(徐源錫)연구위원은 "청와대 비서실 개편으로 이제는 각 부처의 장관이 과거 청와대 수석과 같은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데 아직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며 "장관들이 소신껏 소관사무를 해결하지 못하고 여전히 비서실 눈치를 본다든지, 어떤 지침이 하달되기를 기대한다든지 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당정 분리 원칙은 보스정치 청산의 계기는 마련했으나 집권당 기능의 실종과 정치개혁의 부진 현상을 초래했고, 개혁의 동반자 집단을 구축하는 데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盧대통령의 시스템 정치는 아직 실험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강민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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