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는 국회, 학생은 학생이어야 한다|금창태<편집부국장겸 사회부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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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대학생들의 민정당사점거사태가 있은지 벌써 닷새째로 접어들었다.
그동안 사건의 처리가 어떻게 되었고 대책은 어떤 차원에서 마련되고 있는지 누구하나 시원하게 설명해주는사람이 없으니 궁금하기 짝이없다.
경찰에 연행된 2백60여명의 학생들은 또 어떻게 되었나. 형사소송법이나 경찰관직무집행법에는 수사기관에 연행된 피의자는 24∼48시간이내에 구속이 되든지 아니면 석방이 되도록 명문으로 규정돼 있다. 그런데도 1백시간이 지나도록 구속된 학생도, 풀려난 학생도 없다. 부모들이 애를 태우고 있지만 면회도 안된다.
이런문제를 따져야할 국회는 공전하고 있으니 더욱 답답하다.
많은 시민에게 경악과 당혹을 안겨주었던 사건의 처리과정이 이렇게 되어도 당연한 것인가. 학생들의 「범법」을 다스린다면서 경찰스스로가 「준법」을 외면하는 사태를 무엇으로 설명해야 하나.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모두가 석연치 못하고 헛갈리는 일뿐이다.
민정당사를 점거했던 학생들의 요구도 마찬가지다.
학생들이 내걸었던 14개항의 요구조건은 대부분 야당이나 사회해당분야에서 마땅히 제기돼야할 정치·사회적 현안들이다.
이런 문제들이 국회나 당사자가 아닌 학생들을 통해 계속 제기되는 사태를 과연 어떻게 이해해야 할것인가.
말할것도 없이 학생들의 이같은 행동은 정작 그러한 주장을 해야할 정치인이나 사회 각해 당분야가 자기주장을 제대로 할수없거나 하지않는 상황에서 빚어진다고 보여진다.
명백히 제도권내에 여야정당이, 그것도 복수의 야당이있고 언론·노조등 각영역의 조직과 기구가 간판을 걸고있다.
그런데도 학생들의 관점에서는 이런것들이 모두 있으나 마나한 존재라니 딱한 노릇이다.
더우기 국회에서는 여야간에 학도호국단조직의 개편을 주안으로하는 학원자율화발전방안이 거론돼 학생들의 정치적요구와는 대조를 이룬다.
정치현안을 해결해야할 국회는 학원문제를 다루다 공전을 거듭하고 있는데 대학생들은 거꾸로 정치현안을 들고 여당을 추궁하다 무더기로 잡혀갔다.
어디가 국회이고 누가 학생인지 머리가 어지럽다.
국회와 학생이 제머리를 놓아두고 서로 상대방의 머리를 깎아주겠다고 가위를 들고 덤비는 꼴이다.
기막힌 주체의 혼돈이며 분수의 월경이다.
물론 문제가 있는데도 덮어두고 있는것 보다는 누구의 입을 통해서든 공개적으로 제기되는편이 낫기는하다.
그러나 이같은 혼돈과 월경은 그자체가 새로운 시빗거리가 되고 또다른 혼란의 요인이 돼 본질에의 접근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대학생들이 사회 모든 분야를 대변하는 「유일한 야당」처럼 나서야하는 상황은 그래서 심각하게 받아들여져야할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사태해결의 주도권을 잡고있는 여당은 집권 5년이 되도록 그칠사이없이 빚어지고 있는 이같은 혼란상에 깊은 가지성찰이 있어야한다.
왜 학생들이 저토록 집요하게 야당행세를 하려드는지, 그리고 사회 각 분야는 학생들의 「대변」을 가부간 수렴치못하고 침묵만하고 있는지. 그 침묵의 의미는 과연무엇인지.
뿌리에서부터 사태의 본질을 직시하고 해결방안을 모색해야한다고 본다.
이런점에서 당사점거학생들의 처벌여부를 놓고 왈가왈부하는 당국의 사건처리 자세는 사태의 본질을 접어둔채 표피적 대응으로 시종하는 인상을 지울수 없다.
지켜보는 시민의 입장에서는 구두신고 발등 긁는것만 같아 답답하기 짝이 없다.
학생의 처벌여부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도 정치·사회각분야가 본령의 회복과 기능의 활성화를 서둘러야한다. 그러기위해서는 국회는 국회, 야당은 야당이어야하며 언론은 언론, 노조는 노조여야한다. 그리고 학생은 학생이어야만한다.
먼저 국회에서부터 여야정당이 정치하는 「시늉」을 그만두고 정치의 「본령」을 보여주어야한다.
해금·지자제·선거법·노동관계법·언기법개정문제등 국민의 관심을 모으고있는 쟁점들이 얼마나 많은가.
정치를 해야할 국회가 학내문제인 학생자치기구개편따위를 이슈로 삼아 실랑이를 벌이다가 국회를 공전시킨대서야 국회의 체신에 관계되는 일이다. 학원을 자율화했다면서 교수와 학생들에게 맡겨야할 자치기구문제를 국회가 왜 나서서 감놔라 배놔라 하는지 알수가 없다.
학생들도 「민중의 대변자」로 자처하고 나서는 행동은 학생의 본령이 아님을 명확히 인식해야한다. 학생들의 원칙적주장은 당장에 실현될 수있는 현실적 목표라기보다는 사회발전과 문화창조의 자극제가 되는 「안티데제」로서 의미를 지닌다는 점을 인식해야할것이다. 그런점에서 그 표현방법도 주장의 순수성을 뒷받침할만큼 엄격한 한계를 지켜야한다고 믿는다. 학생의 신분을 벗어난 「정치」는 학생들의것이 아니다. 국회가 국회이어야하듯이 학생도 학생이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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