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 첫 확진 6일 지나서야 문형표 대면보고 받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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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이 8일 야당 의원의 사퇴요구에 대해 “최선을 다해 메르스 사태를 빨리 안정시키겠다”며 즉답을 피했다. [김성룡 기자]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이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첫 환자가 확인된 뒤 6일 만에 박근혜 대통령에게 첫 대면보고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문 장관은 8일 메르스 관련 국회 긴급 현안질의에 나와 새정치민주연합 이목희 의원이 “최초로 보고한 게 언제냐”고 묻자 “5월 26일 국무회의에서 첫 보고를 했다”고 답했다. 박 대통령은 당시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했고, 문 장관은 회의에서 구두로 보고했다고 한다. 국내 첫 메르스 확진환자는 지난달 20일 나왔다. 문 장관은 “(대면보고는 지난달 26일 처음 했지만) 수시로 여러 가지 형태로, 유선상으로도 보고를 했다”며 “상황이 좀 더 심각해지면서 추가 대책 등도 보고했다”고 했다. 하지만 이 의원은 질의 뒤 복지부 자료를 공개하며 “대면보고 전까지 실무선에서 ‘일일 환자발생 현황’ 등을 보고하는 수준에 그쳤다”고 지적했다.

 이날 긴급 질의에선 여야를 떠나 정부의 초기 대응을 비판했다. 특히 정부가 메르스 환자가 진료를 받거나 거쳐간 병원명을 18일 동안 공개하지 않다가 지난 7일 뒤늦게 공개하거나 14번째 확진자가 결핵 환자라는 사실을 알리지 않은 데 대한 지적이 잇따랐다.

 한국여자의사회장을 지낸 새누리당 박인숙 의원은 “14번 환자인 35세 남자가 ‘기저질환’이 있는데 이 중요한 정보가 빠진 건지, (복지부가) 숨기는 건지 혹시 아느냐”고 물었다. 기저질환이란 평소 환자가 앓고 있던 질환을 뜻하며, 호흡기질환을 기저질환으로 갖고 있을 경우 메르스에 감염될 확률이 더 크다고 한다. 이에 문 장관은 “그분의 자녀가 결핵을 앓고 있고, 본인도 결핵을 앓고 있다”고 답했다. 박 의원은 “그런 정보가 하나도 공개가 안 돼 있다. 환자 정보도 공개돼야 한다”며 “비밀주의가 병을 키운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울대 의대 교수 출신인 새정치연합 김용익 의원도 “절대로 비밀주의를 쓰지 마라. 망하는 길”이라고 가세했다. 문 장관은 의사협회·병원협회 등의 비상연락망을 통한 상황전파에 대해서도 “기본적으로 연락망은 운영하려고 준비하고 있었습니다만…”이라고 답해 초기대응 때 연락망을 제대로 가동하지 않은 것도 인정했다.

 메르스 확진환자가 발생한 평택성모병원이 지역구(평택을)인 새누리당 유의동 의원은 “정부의 메르스 대응은 낙제점이다. (메르스 대응) 매뉴얼은 현장에서 무용지물로 혼란만 가중시켰다”며 “129(보건복지 콜센터)에 수십 차례 전화했지만 연결되지 않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달 29일 평택성모병원에 들렀다가 격리 조치가 필요 없는 ‘능동감시 대상자’로 분류된 유 의원은 “(복지부 판정) 이틀 뒤 보건소에서 내가 ‘자가격리 대상자’라는 전화를 받았다”며 “나는 자가격리 대상자냐, 능동감시 대상자냐”고 따졌다. 그는 문 장관에게 “코에 바셀린을 바르고 집에 양파를 두는 것이 메르스에 도움이 되느냐”고 묻기도 했다. 문 장관이 “그렇지 않다”고 답하자 유 의원은 “장관이 침묵하는 사이에 평택에선 (그런 소문이 퍼져) 바셀린과 양파를 사러 뛰어다니는 일이 벌어졌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야당 의원들은 문 장관의 사퇴를 촉구했지만 문 장관은 “메르스 사태가 조기에 안정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사퇴의사를 밝히지 않았다. 문 장관은 “초동 대응에서 면밀하게 대응했으면 더 빨리 메르스를 종식시켰을 것이다. 송구스럽다”면서도 정부 대응이 실패했다는 지적에 대해선 “어떤 정책이든 매뉴얼대로 한 것은 실패라고 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야당 의원들은 박 대통령의 방미(14~19일)를 연기해야 한다는 주장도 내놨다. 하지만 문 장관은 “지금 메르스가 확산되는 정점에 와 있다고 판단한다. 오늘(8일)을 기점으로 총력을 다해 잠재우겠다”고 했다.

 일각에선 메르스 대응을 진두지휘해야 할 문 장관을 국회가 부른 데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나왔다. 박형욱 단국대 의대 교수는 “서면이나 여러 경로로 의견 제출이 가능한데 현장이 급한 상황에서 주무장관을 나오게 하는 게 (메르스 사태에)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글=허진·이지상 기자 bim@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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