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53) 제81화 30년대의 문화계 (86)|총독부의 언론탄압|조용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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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그 당시에 신문을 경영하기란 참으로 힘들었다. 독자들은 총독정치에 반대하여 사사건건 물고 뜯는 신문을 만들기를 원하였다.
내가 중학생이 될 때까지도 집안 어른들이나 동네사람들이 모여 있는데 가면 이런 소리를 하는 것읕 늘 들었다.
『요새 신문이 그게 무어야. 바른 소리 하나 못하고, 그저 죽여 줍시사 하는 꼴이 아냐!』 『신문이 너무 물러. 콕콕 찌르고 좀 따끔해야 신문다운 맛이 나지, 밤낮 맹물같은 소리만 하고, 이제 신문 끊을란다.』
이렇게 떠들어대고 신문이 총독정치의 아픈 데를 찌르지 못하고 싱겁다고 불평이었다.
그러나 신문사측으로 말한다면 뾰족한 소리를 했다가는 압수, 조금 심하면 정간을 당하니,정간을 당하면 신문사는 망하는 것이다. 신문이란 매일 나와야 팔아먹는 것이지, 하루라도 안나오면 신문의 생명은 없어지는 것이다.
우선 천신만고해서 모아 온 독자들이 떨어져 나가 쌓아올린 지반이 무너지고, 신문대금이 안들어오고, 광고수입이 없어지고, 그 대신 사원들의 월급이나 경비는 꼬박꼬박 내야하니 이러고서 신문사가 버텨 나갈 장사가 없다.
이 때문에 영업국에서는 제발 압수당하지 않게 신문을 만들어 달라고 편집국에 애걸하지만 천하의 지사들은 이런 소리를 들은체 안하고 붓 가는 대로 써버린다. 그 좋은 예가 앞에서 말한 시대일보의 경우다. 처음에 5천원을 가지고 시작했는데, 뒤따라 들어온다는 자금은 얼른 안 들어와 돈이 달랑달랑한데, 민세 안재홍이란 양반은 자꾸 압수당항 사설만 써냈다. 보다 못해 편집국장 진학문이 민세한테 애걸하면 그 당장에는 조심하는 듯 하다가 며칠 있으면 또 버릇대로 압수당할 사설이 나왔다.
조선일보의 경우도 상해파의 공산주의자 신일용이 뚱딴지같은 『조선과 노국과의 정치적 관계』라는 제목의 사설을 써서 신문은 정간당하고, 이상협일파가 노심초사해서 일류신문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 하루아침에 영락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독자들의 비위도 어느 정도 맞춰 주어야 하고 신문 경영면에서도 수지를 맞춰 나가야 하니까 이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민간 3대 신문중에서 동아일보만은 경영자가 바뀌지 않고 그냥 끌고 나왔는데, 이것은 경영자인 김씨문중이 원체 튼튼했기 때문이었다. 조선일보는 방응모재단이 들어서기까지는 몇번이나 경영난으로 엎치락 뒤치락하였고 시대일보와 그 대를 이은 중외일보, 또 그 대를 이은 조선중앙일보는 경영난으로 제일 많이 문을 닫았다 열었다 하는 험난한 길을 걸어왔다.
앞서 동아일보 창간때에 수야정무총감이 「신문가로수설」을 주장했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경무국은 실제로 이 정책을 실행해왔다. 가지가 너무 뻗쳐 성가실 때에는 가지를 쳐버리는 정간이라는 약을 쓰고, 조선일보같이 잘될성 부른 때에는 조금 이상한 조짐이 보여도 역시 정간이라는 극약을 써서 아주 못 자라게 만드는 그런 정책을 번갈아 가면서 써왔다. 그들은 교묘하고 간악한 방법으로 언론을 억압하여 온 것이다.
그때 종로경찰서에는 고등계주임에 삼륜이라는 조선말을 잘 하는 자가 있어서 강연회때면 이 자가 꼭 임석하는데, 이 자는 조선말을 어떻게 잘 하는지 연사의 말투가 그들이 말하는 불온한 말이 나올 듯 하면 미리 중지시켰다. 불온한 말을 해버린 다음에 중지시키면 효과가 없으니까 미리 말이 못 나오도록 중지시키는 것이다.
신문을 검열하는 경무국 도서과도 서촌·복강·광나등 순사출신의 우리말을 잘 하는 자가 있어서 이들이 귀신같이 소위 불온한 문구를 잡아내므로 그들의 눈을 속이기가 힘들었다. 이들이 전화로 신문사에 향해 『여기는 도서과인데 윤전기를 정지해 주십시오』하면 그때는 압수고, 삭제고, 무슨 사고가 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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