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쓰는 해외교육 리포트] <38> 오스트리아 빈 에반겔리쉐 사립 초등학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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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 땐 조용히? 엉뚱한 얘기라도 많이 해야 점수 주는 오스트리아

江南通新이 ‘엄마(아빠)가 쓰는 해외교육 리포트’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세계 각지에서 자녀를 키우는 한국 엄마(아빠)들이 직접 그 나라 교육 시스템과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 대해 생생하게 들려 드립니다.

교사 한 명이 입학부터 졸업까지 지켜보며 진로 찾아줘
학습 열의 중요, 수업 집중 안 하면 학부모 상담
중·고교는 총 8년…교사 전원이 석사 이상, 교수로 부르며 존경

엄마 심민아(42)씨

우리 부부는 1995년 결혼 직후 오스트리아로 건너와 21년째 이곳에 살고 있다. 두 아들 모두 이곳에서 태어났고, 큰아들은 빈 국립대학 법학과 1학년에 재학 중이다. 큰 아이와 열 살 차이가 나는 늦둥이 둘째 아들은 형이 다녔던 초등학교에 입학해 이제 3학년이다. 이곳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오스트리아의 유치원부터 초·중·고교를 거쳐 대학 교육까지 다 경험한 셈이다.

 사실 1997년 외환위기(IMF) 때 가족 모두 귀국을 생각했었다. 하지만 한국행을 포기했던 결정적인 이유가 아이의 학교 문제였다.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던 큰아이가 학교생활을 정말 행복해하고 있었고 친구들과 헤어지기 싫어했다. 나도 막상 아이를 한국 학교로 데려가려고 생각해보니, 등교해서부터 하교 시간까지 책상 앞에 엎드려 자다가 또다시 학원으로 이어지는 모습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오스트리아 빈에는 학업을 위한 학원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놀이터에서 뛰어놀거나 잔디 위에 엎드려 책을 읽는 아이들뿐이다. 결국 아이가 더욱 행복하게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택해야겠다는 생각에, 외환위기 당시 경제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오스트리아에 남는 걸 택했다.

 오스트리아와 한국 교육의 가장 큰 차이점은 ‘대학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들의 교육 목표는 ‘어떻게 하면 아이가 즐겁고 행복하게 사느냐’지, 명문 학교 진학에는 큰 관심이 없다. 그렇다고 교육 프로그램이 엉성하다거나 질이 떨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교육의 기준이 아이의 관심과 적성에 맞춰져 있고, 교사와 학부모가 이를 찾아주기 위해 서로 의논하고 계획을 세우며 돕는 모든 과정이 곧 교육 내용이다.

공개 수업 미리 보고 학교 골라

에반겔리쉐 사립학교는 기독교재단 소속이다. 추수감사절이면 전교생이 모여 음식을 나눠먹고 공연을 하며 즐긴다. [사진 학교 홈페이지]

둘째 아들 성오가 다니고 있는 에반겔리쉐 사립 초등학교는 큰아들이 졸업한 학교이기도 하다. 오스트리아는 9월에 새로운 학년이 시작되는데, 첫째 아들이 9월생이라 국립학교에 가려면 이듬해 입학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한 해라도 일찍 학교에 보내고 싶어 사립학교를 알아봤다. 6~7개 학교의 공개 수업을 참관하고 상담을 받아본 뒤에 아이에게 가장 잘 어울릴 것 같은 학교를 골랐다. 오스트리아의 학교는 학부모를 대상으로 공개 수업을 자주 연다. 학교별 공개 수업 일정은 은행에 가면 비치된 소책자에 수록돼 있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는 반드시 교장과 학생의 면담을 거쳐야 한다. 에반겔리쉐도 마찬가지다. 면담 과정은 이렇다. 8명의 학생이 교사 인솔하에 한 교실에 들어가 그림을 그리고 이야기를 해본 뒤, 4명씩 교장실로 들어가 대화를 나눈다. 예를 들면 창문 옆에 꽃병이 놓인 그림을 보여주고 이것을 문장으로 표현해보라고 하거나, 숫자를 사용해 그림을 표현하라(예: 꽃이 다섯 송이 있다)고 하는 식이다. 학생뿐 아니라 학부모도 교장과 면담을 해야 한다. 학부모에게는 주로 이 학교를 선택한 이유를 묻는다.

초등학교 1학년 학생은 알파벳 읽고 쓰는 법부터 철저하게 가르친다. [사진 학교 홈페이지]

 입학할 때나, 학교 다닐 때나 교사가 가장 관심 있게 보는 건 ‘학습에 대한 열의’다. 설령 답을 맞히지 못하고 엉뚱한 이야기를 하더라도 교사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질문에 적극적으로 답하는 태도를 본다는 얘기다. 수업 시간에도 묻는 말에 집중하지 않거나 멍하게 딴생각하는 걸 가장 싫어한다. 학생이 이런 태도를 보이면 곧바로 학부모에게 알리고 교사와 상담에 들어갈 정도다. 이렇게 학생의 수업 참여를 중요시하는 만큼, 교실 분위기는 활달함 그 자체다. 아이들은 교사의 질문에 적극적으로 답을 하고 자신의 의견도 거리낌 없이 이야기한다.

 수업 시간에 놀이를 하는 경우도 많다. 얼마 전 학교를 찾았을 때는 ‘시장 놀이’를 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직접 그림을 그리거나 종이를 접어 상품을 만들고 가격을 정한 뒤 친구들에게 파는 놀이 겸 수업 시간이었다. 물건을 사고 싶은 아이는 일을 해서 물건값을 번 다음 구매를 하는 식이다. 성오는 사고 싶은 물건이 있는데, 돈이 부족하자 울음을 터뜨리는 모습이 보였다. 교사가 다가가더니, 성오의 역할을 상인으로 바꿔줬다. 직접 자신이 팔 물건을 정하고 가격을 책정한 뒤에 친구들에게 팔아보는 역할을 맡긴 거다. 수업 시간이 워낙 활기차다 보니 아이들끼리 다투거나 고집을 부리는 일도 발생하는데, 교사가 이를 다툼으로 보지 않고 새로운 교육으로 아이의 생각을 바꿔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단 한 과목이라도 낙제하면 유급

과학시간에는 이론을 설명만 하지 않고 직접 실험하며 원리를 알려준다. [사진 학교 홈페이지]

오스트리아는 초등학교 4년, 중학교 4년, 고등학교 4년제다. 중학교부터 인문계와 이공계, 직업학교로 나뉘어 진학한다. 대개 중학교와 고등학교는 한 곳에서 마치는 경우가 많아, 사실상 중등교육과정이 8년이라고 보면 된다. 신기한 점은 초등학교 4년, 중고교 8년을 각각 한 명의 선생님이 담당한다는 사실이다. 한국 학부모들은 한 명의 교사가 아이의 입학부터 졸업까지 책임진다는 사실에 거부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막상 보내보면 장점이 정말 많다. 아이를 오랫동안 지켜보며 능력과 적성, 성향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이끌어주기 때문에 저절로 교사를 믿고 의지하게 된다.

 김나지움이라 불리는 인문계와 이공계 국립 중고등학교는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는 학생들이 진학하는 곳이다. 김나지움의 교사는 전부 석사 학위 이상의 전문가이고 호칭도 ‘교수님’이라고 부를 정도로 사회적으로 존경을 받는다. 그만큼 사회 전체가 교사의 실력과 전문성을 인정해주고 있다는 얘기다.

 간혹 한국 학부모들에게 “유럽 학교는 아이들의 성적보다 인성이나 사회적 유대감 등 정서적 교육을 더 하는 같다”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자유로운 분위기와 인간적인 존중을 우선하는 유럽의 학교가 학업 성취도 측면에서는 한국 등 아시아 학교보다 뒤처지는 것 아니냐는 얘기다. 사실 이런 생각은 완전히 오해다. 오스트리아의 학교에 등수는 없지만 성적을 존재하고, 남과의 경쟁 대신 자신과의 싸움을 하게 하는 교육을 하고 있다. 성적표도 매년 두 번씩 나오는데, 과목별로 1~5점까지 매겨져 있다. 1점은 ‘아주 잘함’이고 5점은 ‘낙제’에 해당한다. 또 성적이 전체 평균으로 매겨지는 게 아니라, 철저한 과목별 이수다. 그러다 보니 한 과목에 5점을 받으면, 나머지 과목 모두 1점을 받아도 학년 진급이 어렵다. 그래서 모든 아이가 한 과목도 놓치지 않고 열심히 공부하는 분위기다.

 시험도 철저하게 치러진다. 초등학교 1학년 때는 알파벳을 배우고, 2학년 때는 필기체로 쓰는 법을 익힌다. 이때까지 읽고 쓰는 법을 완전히 떼고 나면 3학년부터는 사회와 과학 시험을 한 학기에 한 번씩 봐야 한다. 4학년 때는 국어·수학·사회·과학 시험을 치르는데 매주 한 과목씩 시험을 보고, 시험 범위는 일주일 전에 공지된다. 우리나라처럼 정해진 기간에 전 과목 시험을 한꺼번에 치르다 보면, 평소엔 학업을 게을리하다 벼락치기 공부로 성적을 올릴 수도 있다. 하지만 매주 시험을 치르는 오스트리아의 학생들은 평소에도 꾸준히 공부를 지속해야 하고, 한 과목이라도 과락이 되면 학년 진급이 안 되기 때문에 전 영역을 고루 열심히 할 수밖에 없다.

2~3개 외국어 술술 하는 아이들

길거리 표지판의 의미를 알려주는 수업. [사진 학교 홈페이지]

이곳은 학원이라는 게 없어서인지 학생들의 자유 시간도 많은 편이다. 방과 후에는 야외에서 뛰어놀거나 볕이 좋은 곳에 앉아 독서에 몰두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항상 볼 수 있다. 이 모습을 본 한국 기업 주재원이 “이 나라에선 스마트폰을 팔아도 실적을 내기 어렵겠다”고 얘기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이렇게 자유를 만끽하며 자라는 아이들이니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것에 흥미를 느끼지 못할 것이란 의미다.

 이곳 교육의 또 다른 장점 중 하나는 다양한 언어를 익힐 수 있다는 것이다. 초등학교 때까지는 독일어에 대한 기초를 철저하게 다진다. 김나지움에 진학하면 영어는 필수고, 프랑스어와 이탈리아어 중 하나를 선택해 반드시 익히게 한다. 어학연수도 보내준다. 영국에는 2~3주가량 머무는 데 비용은 100만원 정도 낸다. 프랑스나 이탈리아는 열흘 남짓이고 80만원 정도 내면 된다.

 대학생이 된 큰아들은 독일어·영어·프랑스어·스페인어에 능숙하고, 라틴어도 이수해 읽고 쓰는 데는 어려움이 없는 수준이다. 이곳에서 나고 자랐지만, 유치원부터 중학교 때까지 한글학교에 보내 한국어도 익숙하다. 지난해 대학시험을 치르고 나서 한국 기업에 연수를 다녀왔는데, “중국에서 온 친구는 영어가 부족하고, 미국에서 온 학생은 한국말을 잘 못하는데 나는 여러 언어를 쓸 수 있어 지내기 편했다”고 얘기하기도 했다.

 오스트리아 교육의 힘은 ‘남보다 빨리’가 아니라 ‘나에게 맞는’ 것을 배우고 익히게 한다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김나지움으로 충분히 진학할 수 있는 성적의 아이여도, 자신이 빵 만드는 직업을 갖고 싶어하면 어떤 학부모도 아이의 꿈을 제지하지 않는다. 공부를 선택한 아이 역시 그 분야에 전문 지식을 쌓고 학문을 깊게 연구하고 싶어서 김나지움과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지 ‘좋은 직업’을 위해 학벌이 필요한 게 아니다. 이런 합리적이고 성숙한 사회가 학교의 문화도 행복하고 다양하게 만든 것이 아닌가 한다.

정리=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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