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닐라에도 「봄」은 오는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72년까지만해도 필리핀은 동남아국가중 민주주의에 가장 근접해 있던 나라였다. 그래서 구미의 정치학자들은 필리핀을 신생국 그룹의「정치모범생」이라 했다.
후진국정치연구의 대가인 미국의「제임즈·콜먼」(James Coleman)은 그 이유를 ①지배층과 대중사이에 격차가 사라져 다분히 동질적인 정치문화가 형성돼 있고②정치와 행정에서 기능적인 분화가 이뤄져있고 관료제는 비전제적이며 ③정당은 각계각층의 이익을 집합적으로 대변하고 있고 ④군부가 정치적 중립을 지키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오늘의 필리핀 사정은 이같은 낙관론에 이상이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콜먼」이지적한 4가지 조건가운데 하나도 지금의 필리핀엔 존재하지 않을 뿐 아니라 반정부 군중시위는 그칠날이 없고 1인독재·계엄통치·족벌정치같은 반민주주의적 요소들만이 범람해 있다.
이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72년9월「마르코스」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하면서 시작됐다.
「마르코스」는 65년 선거에서 승리하여 당당한 민선대통령이 됐고 69년에 재선됐으나 서울에서 10월 유신이 있기 27일전에 계엄령을 내려 「아키노」를 포함한 정치·언론·대학의 반정부인사들을 대량으로 검거·투옥하고 군부의 힘을 빌어 통치를 강화했다.
73년1월에는 부통령제를 없앴고 7월에는 대통령 유임을 선포, 임기가 끝난 뒤에도 계속 집권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바로 여기서 「마르코스」정권의 정통성문제가 제기된다. 정통성은 합법적인 절차를 통해 집권하고 통치해야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물론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때 카리스마적인 인물이 혁명적인 방법으로 집권해도 국민의 지지와 정치적인 실적이 있으면 정통성은 성립된다.
그러나 「마르코스」는 그 어느것도 갖추지 못하고 있다.
그가 계엄통치를 시작한 뒤로 경제는 더욱 악화되고 정치혼란은 더욱 심해졌다. 이것은 동향과 친척을 기용하는 족벌정치와 군부에 의한 계엄통치를 더욱 불가피하게 했다.
79년 내외의 압력에 못이겨 계엄령을 해제하긴 했으나 강압통치는 더욱 가중돼 왔다.
군에 대한 과도한 의존은 군의 부패와 함께 과잉충성을 가져와 결국은 오늘의 파국을 가져온 「아키노」사건을 낳고 말았다.
필리핀군부는 정통성이 결여되고 부패·무능한 정권의 시녀가 되어 야당지도자를 살해하고는 이를 공산게릴라의 소행이라고 거짓 발표했다.
국가나 국민에 대한 충성 보다는 타락한 독재자를 위해 생명보다도 중시한다는 정직·권위·명예등 군인윤리를 헌신짝처럼 저버린 것이다.
이런 판국에 나온 소장장교들의 숙정요구는 정당한 것이다. 이것을 어떻게 수렴해 낼 것이냐는 「마르코스」의 역량문제이지만 필리핀정국과 「마르코스」의 정치생명을 좌우할 또하나의 변수임엔 틀림없다.「레이건」대통령의 「마르코스」지지묘명을 단순한 정치적 실수이라고 볼수는 없다.
미국의 대외정책에는 전통적으로 고립주의와 개입주의, 이상주의와 현실주의등 상반된 원칙이 공존해 왔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미국은 동쪽, 즉 유럽에 대해선 고립과 이상을 지켜왔지만 서쪽, 즉 아시아에 대해선 개입과 실리를 추구해 왔다.
바꿔말하면 미국의 세계정책이란 백인종을 우대하고 유색인종을 천대하는 인종차별주의 (racisom)에 토대를 두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구주와의 상호불간섭을 내용으로 하는 몬로독트린이나, 실리에 따라 개인과 철수를 일방적으로 선택한 월남정책, 일본에 대한 원폭사용등만 보아도 명백하다.
필리핀의 경우는 클라크 (공군), 수빅 (해군) 등의 군사기지를 계속 사용해야 할 당장의 필요성 때문에 다수 국민을 외면하고 집권자만 돕는다는 현실주의적 권력정치의 측면을 숨길수가 없다.
신생국 지도자들은 국민의 정치의식이 낮아 자기 의도대로 조종될수 있을때는 외형적인 민주주의를 실시한다. 그러나 국민의 수준이 높아져 쉽게 좌우되지 않는 단계에 이르면 민주절차를 없애버리고 독재체제로 전환하고 만다.
필리핀은 이같은 후진국정치의 한 전형이다.
그러나 「아키노」암살범이 군부라고 지적한 용기있는 보고서를 작성·발표할 수 있는 풍토는 필리핀 민주주의에 대한 「콜먼」의 낙관론을 다시 연상시킨다.
독재정권은 흔히 독재적인 통제에서 후퇴할 때 멸망한다. 「카터」의 인권외교에 못 이겨 탄압을 완화하다가 붕괴된 이란의 「팔레비」가 좋은 예다. 그래서 한번 독재를 시작하면 좀처럼 후퇴할 수가 없는 것이다. 「마르코스」는 국민의 압력에 밀려 보안경찰의 발포권을 철회했고 그의 독재를 받쳐온 장군들을 「아키노」 살해혐의로 재판에 돌렸다.
마닐라의 봄도 그리 멀지만은 않은 것 같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