탯줄, 세포치료시대 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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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1면

장기(臟器)이식에 이어 세포 치료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탯줄 혈액에서 줄기세포를 추출, 배양하는 기술이 국내 의료진에 의해 처음 선보여 한단계 더 가까워졌다(본지 28일자 8면).

줄기세포란 분화가 끝나지 않은 미성숙 세포로 이를 시험관에서 배양하고 분화시킬 경우 의료진이나 환자가 원하는 특정 세포를 무한정 얻을 수 있게 된다. 지금까지 가장 손쉽게 줄기세포를 얻을 수 있는 길은 배아(胚芽)복제를 통해서였다.

이미 마리아병원 등 국내 의료진을 통해 배아에서 심근(心筋)세포 등 특정 세포를 얻는 기술이 개발됐다. 그러나 이 경우 배아의 파괴란 윤리적 문제가 남게 된다.

줄기세포를 얻을 수 있는 또 하나의 방법은 골수 등 신체에서 뽑아내는 방법. 이 경우 윤리적 문제를 피할 수 있으나 다 자란 성체(成體)에서 미성숙 줄기세포를 추출하는 것은 기술적으로 매우 어려워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다.

버려지는 탯줄 혈액에서 줄기세포를 뽑아내는 방식이 각광받는 것은 윤리적 문제를 피하는 동시에 기술적으로 원하는 양만큼 줄기세포를 얻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번에 탯줄 혈액에서 줄기세포를 뽑는 데 성공한 가톨릭의대 한훈 교수는 "그동안 1백차례의 재현성 연구를 통해 1백 종류의 줄기세포를 분리해냄으로써 1백%의 성공률을 보였다"고 말했다. 또 "분리한 줄기세포는 6개월동안 52차례나 계대 배양에 성공했다"고 덧붙였다.

계대 배양이란 세포를 분리해 다시 배양하는 과정으로 그 성공 횟수가 많다는 것은 원하는 만큼의 세포를 시험관에서 얻을 수 있음을 말한다.

탯줄 혈액에서 얻은 줄기세포가 유용한 이유는 또 있다. 자신의 탯줄에서 뽑아냈으므로 이식 후 거부반응이 없는 것이다. 배아 복제에서 얻은 줄기세포는 조직적합성 항원(HLA)이 일치해야 거부반응을 피할 수 있다. 수 만 명의 배아가 보관되어 있어야 환자에게 맞는 줄기세포를 얻을 수 있는 것.

세포치료 시대는 기존 의학의 패러다임을 바꿀 것으로 기대된다. 지금까지 현대의학은 문제가 생긴 장기를 통째로 바꾸는 치료를 위주로 발전해왔다.

간이나 심장.콩팥 등 병든 장기를 떼어내고 건강한 장기를 이식해주는 것이다. 그렇지만 기증되는 장기가 절대 부족하고 기증자에게 부담이 되는 수술을 거쳐야 한다는 점이 문제다.

그러나 줄기세포를 통해 세포이식이 가능해지면 주사 하나로 해결이 가능해진다. 어릴 때부터 췌장이 나빠 발생하는 제1형 당뇨가 대표적 사례다. 이 경우 지금까지 치료는 매일 인슐린 주사를 맞거나 뇌사자의 췌장을 이식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환자의 탯줄이 냉동보관 중이라면 탯줄에서 줄기세포를 추출하고 여기에서 인슐린을 분비하는 췌장의 췌도 세포만 배양해낸다. 이것을 주사로 배에 찔러주면 치료가 완성된다.

굳이 배를 열고 장기를 꺼내지 않아도 된다는 것. 파킨슨 병의 경우 도파민이란 신경전달물질을 분비하는 뇌세포를, 심근경색증의 경우 죽은 심장 근육을 대신할 수 있는 근육세포를 주입하면 된다.

그러나 암의 경우 조금 복잡해진다. 암이 생긴 장기를 수술로 잘라낸다면 잘라낸 모양대로 세포들이 모여 장기를 형성할 수 있는 몰딩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위암이라면 위장 특유의 주머니 모양으로 위장 세포를 만들어내야 한다. 위장세포만으로 소화액과 위산을 분비할 수는 있으나 음식을 저장했다가 배출하는 주머니 역할을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번에 개발된 기술이 바로 환자 치료에 응용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줄기세포에서 원하는 세포만 선택적으로 추출할 수 있어야 하고, 충분히 배양할 수 있어야 한다.

또 인체에 이식할 경우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을 정도로 분화가 잘 되고 주입된 부위에 생착이 잘 되어야 한다는 등 해결 과제들이 남아 있다. 실제 임상시험 등 환자를 통해 효능이 입증되려면 앞으로도 수 년이 걸릴 전망이다.

홍혜걸 의학전문기자.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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