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개의 「아키노암살보고」로 궁지에몰린 「마르코스」|최악의 경우「베르」를 희생양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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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필리핀의 야당지도자 「아키노」암살사건 5인사문위기 발표한 2개의 진상보고서가 이견을 보임에 따라 「파비안·베르」 참모총장의 범죄관련여부는 혼란을 거듭하고 있는 필리핀정국에 새로운 태풍의 눈으로 등장했다.
이사건에 대한 그의 혐의유무가 초점이된것은 『「베르」의 개입은 곧「마르코스」의 개입』을 의미하기 때문.
이런 이유로 「마르코스」대통령은 한가족이나 다름없는「아그라바」위원장의 진상조사결과를 마치 미리 예상이라도했듯 즉각 접수한뒤 TV회견을 통해 『지난1년간 필리핀을 위태롭게한 사태를 이제 종식시키자』고 사건을 서둘러 마무리지으려했다. 「마르코스」는「아그라바」가 이번 사건의 책임자로 지목한「쿠스토디오」장군을 처벌하는 선에서 사건을 일단락시키려는 속셈이 역력했다.
그러나 「아그라바」위원장을 제외한 나머지 4명의 사문위원들은 「마르코스」의 이런 의도에, 제동을 걸고 필리핀의 양심이 살아 있음을 과시했다.
「마르코스」대통령은 자신의 측근 인물에 책임을 돌린 사문위원들의 보고서가 발표되자 「베르」참모총장을 전격적으로 정직시켜 발등의 불을 끄려하고있다.
이는 사건핵심인물을 당분간 국민들의 눈앞에서 피신시켜 직접적인 공격의 화살을 막아보자는 의도임이 분명하다. 「마르코스」가 엇갈린 2개의 진상보고서를 동등하게 접수한것은 비등하는여론과 미국의 압력을 의식한데서 나온것.
필리핀 군부는 「마르코스」대통령에 의해 낙하산식으로 투입된「베르」참모총장과와 필리핀 독립이후 줄곧 군정통파로 성장한 「라모스」참모차장파간에 분열이 심각했던 터여서 「베르」를 직접 관련시킨 보고서는 「라모스」참모차장의 추종세력에 득세의 계기를 마련해준 셈이기도하다.
일부에서는 「마르코스」대통령이 자신의 오른팔격인 「베르」를 강력히 보호하려는 입장이지만 최악의 궁지에 몰릴경우 「베르」를 희생양으로 삼을수도있을것으로 보고있다.
미국도 「베르」참모총장에게 모든 책임을 지워 수렁에 빠진 필리핀사태를 수습하라고「마르코스」대통령에게 암암리에 종용해 온것으로 알려졌었다.
필리핀에 2개의 기지를 갖고있는 미국은 최근 「레이건」대통령의 발언에서 나타났듯이 「마르코스」정권의 전복보다는 사태가 조용하게 해결되기를 바라는 입장이다.
필리핀정치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미국은 그동안 말기현상을 보여온 「마르코스」정권이 계속 안정을 찾지못할 경우 후임자를 물색할지도 모른다.
미상원과 국무성이 「마르코스」정권은 2개월 내지 2년을 버티지 못한다고 평가한사실은 미국이 「마르코스」를 버릴때가 가까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는 「마르코스」를 대신할 강력한 지도자가 있느냐는 문제로 직결된다.
현재 민주야당연합 (UNIDO) 의 「라우렐」의장과「아키노」의 동생「아가피토」등 야당지도자들은 「마르코스」의 퇴진을 강력히 주장하고 있으나「아키노」생전 당시에비해 그 수권태세가 잘 돼있는지는 아직 미지수다.
정권이 뒤흔들릴 정도의 가두시위가 계속될 경우 군부쿠데타의 가능성도 있으며 이경우 민주화에 의한 정국안정보다는 공산신인민군 (NPA)측에 정부전복 명분을 주는등 더욱 큰 혼란이 예상된다.
관측통들은△정부개편및 고위직 대통령측근제거△「마르코스」의 정권이양또는 87년선거출마포기△야당과의 연정수립등 혁신적인 민주화조치가 취해지지 않는한 필리핀정국은 계속 혼미를 거듭할 것으로 보고있다. <김두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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