近김 vs 遠김, 평양은 지금 ‘권력 혈투’ 중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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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9호 01면

북한 권력 핵심부에서 김정은을 둘러싼 파벌 간 권력 갈등이 노골화하고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그동안 물밑에서 진행돼 오던 갈등이 표면화한 대표적인 사례가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의 처형이라는 분석이다. 복수의 국내외 북한 전문가들은 지난 5월 9일 모스크바에서 열린 러시아의 전승절 기념식에 김정은이 불참한 것도 그 연장선이라고 해석한다.

빨치산 2·3세 주축인 ‘원김’ 세력, 김정은에 사사건건 견제구

북한을 자주 드나드는 소식통들은 현영철 처형의 배경으로 김정은과 ‘원(遠)김’ 세력 간의 갈등을 지목하고 있다. ‘원김’은 조연준·민병철 노동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 박태성 평안남도 당비서 등 조직지도부 출신들이다. 이들은 항일 빨치산 2·3세들로 조직지도부에서 잔뼈가 굵었다. 조직지도부는 북한의 사상·인사를 담당하는 노동당 핵심 부서다. 김정은과 ‘원김’ 간의 갈등은 김정일이 2011년 갑자기 숨지면서 시작됐다고 한다.

‘원김’은 정치 신인 김정은을 ‘얼굴마담’으로 내세우고 선군정치 회귀를 시도했다고 한다. 마치 고려시대의 문벌 귀족처럼 실질적으로 북한을 통치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이는 김정일이 숨지기 전까지 가장 걱정했던 부분이다.

이에 따라 김정일은 아들을 호위할 ‘근(近)김’ 친위세력을 전진 배치했다.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최용해 당비서, 박도춘 전 국방위원, 김양건 통일전선부장, 김평해 간부부장 등이다. 장성택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자신의 세력이 없는 테크노크라트들이다. 처형된 현영철도 김정은이 발탁했다는 점에서 ‘근김’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원김’의 견제로 장성택이 2013년 처형됐고, 최용해는 군 총정치국장과 정치국 상무위원 등 2인자까지 올랐다가 군 총정치국장에서 물러났고 정치국 위원으로 강등됐다. 최근에는 박도춘도 자리에서 물러났다. 김양건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저서 『대통령의 시간』에서 싱가포르 비밀접촉이 공개돼 곤욕을 치렀다가 다시 살아났다. 익명을 원한 정부 관계자는 “김양건의 건재는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김정은의 의지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정은이 지난해부터 대남관계 개선 의지를 밝혔다가 곧바로 번복한 것, 대화 분위기를 고조시킬 여건에서 도발과 강경으로 일관하는 것 등이 김정은 개인의 결심과 의지만은 아닐 수도 있다는 시각이다.

그렇다면 최근의 공포정치는 김정은이 강압적인 방법으로 유일지도 체제의 실권을 확보하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김정은은 이미 지난해부터 ‘원김’을 강력 견제해 왔다. 국정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현성일 수석연구위원은 “북한이 지난해 9월 ‘반당 종파행위’를 하고 뇌물을 받았다는 죄목 등으로 당 조직지도부 부부장과 선전부 간부 20여 명을 총살했다”고 밝혔다.

북한 군부에서 현영철이 맡았던 인민무력부장은 행정직이기 때문에 군 총정치국장처럼 실권이 많지 않다. 따라서 ‘근김’인 현영철의 처형은 ‘원김’에 측근도 처형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최후통첩에 가까운 경고를 보낸 셈이다.

한편 ‘원김’은 김정은이 격에 맞지 않게 소소한 일들을 현지 시찰하는 모습을 노동신문과 조선중앙TV에 자주 노출시키고 있다. 북한 내부 권력 갈등에 주목하는 전문가들은 이 같은 매체 전술을 ‘김정은 격하 시도’의 하나로 해석하기도 한다. 김정은의 신비감을 희석시키고 곤궁한 인민의 삶과 괴리감을 주어 거부감을 일깨우려는 의도가 깔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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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석 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 ko.soos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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