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게아 - 롱고롱고의 노래 <8> 머리에 우주를 담은 남자와 의문의 섬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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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뗏목거리를 찾았다.

“뭘로 만들어? 나무 쪼가리 따위는 없어. 여긴 우주 비행선이야. 우주 금속만 있을 거라고.”

마루가 앵앵거렸다.

“포기하지 말자. 마루야. 긍정적인 사고는 긍정적인 미래를 가져다준다. 알지? 수리의 멘션!”

“몰라.”

마루는 징징거렸지만 수리는 누구보다 열심히 뗏목거리를 찾았다. 친구들과 선생님을 살려야겠다는 강한 책임감이 들었다. 사비도 골리 선생님도 1층부터 7층까지 계단을 오르면서 모든 방을 뒤졌다.

“어쩐지 이 계단, 데자뷰 같아. 전에 거인들과 함께 올랐던 그 계단….”

골리 선생님이 갸웃하는 수리의 어깨를 툭툭 쳤다.

“그것 봐. 내가 인생은 판타지라고 했잖아? 난 폴리페서를 만난다는 목표가 생겼어. 어떤 일이 닥쳐도 이겨낼 거야. 까짓것 만들자. 뗏목!”

“샘, 그전에 우린 죽을 수도 있어요.”

마루가 또 시비를 걸었다.

“그럼 죽어서라도 만나겠지, 뭐.”

마루와 골리 선생님이 실랑이를 벌이는 사이, 비행선이 갑자기 용수철처럼 휙 튀어 올랐다. 덩달아 아이들도 튀어 올랐다.

“살려 줘~ 죽기 싫어.”

골리 선생님부터 비명을 질러댔다. 긴 목이 허공에서 훌러덩훌러덩 춤을 추고 있었다. 아이들은 층계 난간을 붙잡고 떨어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비행선 곳곳에 설치된 모니터 중 하나에 매달린 수리는 모니터를 통해 문 속의 문들, 그 수많은 문들이 활짝 열려 있는 것을 보았다. 빛과 빛 사이로 더 밝은 빛을 내는 문이 끊임없이 열리고 또 열렸다. 수리는 잠시 그 황홀한 광경에 넋을 놓았지만, 금세 현실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두 팔이 바들바들 떨렸고 핏줄이 불끈 올라왔다. 흐르는 땀 때문에 당장 미끄러질 것 같았다. 두 팔로 수리의 두 다리를 붙잡고 있던 사비가 죽어가는 목소리로 수리를 불렀다.

“버티기 힘들어. 손을 놓을 것 같아, 수리야.”

사비는 눈동자에 가는 핏줄이 돋았다. 수리는 주변을 둘러봤다. 모두 안간힘을 쓰고 매달려 있었다.

“얘들아 힘내. 샘, 힘내세요. 끝까지 버티세요.”

수리는 눈을 꾹 감았다.

“아~아 아빠. 알려주세요. 다음 암호가 뭐예요?”

그러나 우주선은 놀이동산의 다람쥐 통처럼 위·아래로 홀라당 다시 뒤집히며 한 바퀴 빙 돌아 원래 위치로 돌아왔다. 여전히 아이들은 매달린 채였다. 사비는 이제 한 팔로 수리의 다리를 잡고 있었다. 쉼 없이 눈을 깜빡이던 수리가 아무거나 닥치는 대로 말하기 시작했다.

“글래디에이터.”

“스타워즈.”

“스, 스파게티”

불쑥 마루가 끼어들었다. 수리는 멈추지 않았다.

“노란 집, 노란 문.”

“문, 문어 다리.”

마루가 계속 끼어들었다.

“마루야, 그만 해라. 이상한 암호. 이상한 문자.”

“이스터 섬. 거인석상들.”

“아참, 거인석상에 새겨져 있던 복잡한 숫자들은 못 외우겠네.”

비행선 안은 이제 폭풍이 몰아치고 있었다. 휘이잉~. 음산한 소리를 내며 불어오는 폭풍은 아이들을 당장 떨어트릴 기세였다.

“숲으로 돌아갔다! 아참 이건 아까 써먹었지?”

순간 수리는 금발의 작은 소년을 떠올리곤 작은 목소리로 외쳤다.

“나는 누구인가?”

방금 전까지의 미친 듯한 요동이 거짓말처럼 비행선이 뚝 멈추었다. 폭풍도 멈추었다. 비행도 제 위치로 돌아왔다. 그러나 빛의 꼬리조차 없이 깜깜해졌다. 잠시 후, 흑암을 뚫고 찬란한 회오리 은하가 불쑥 나타났다. 비행선에 타기 전 봤던 바로 그 은하였다.

머리에 우주를 담은 남자

“나는 누구인가?”

꿀 성대를 가진 웅장한 음성이 메아리처럼 들려왔다. 웅장한 메아리의 음성을 보낸 곳을 향한 모두의 얼굴은 겁에 질린 표정이었다.

“누, 누, 누구세요?”

좀처럼 당황하지 않는 천연덕스러운 배짱의 소유자 수리마저 말을 더듬었다.

“나는 누구인가?”

“누구시냐고요?”

같은 말을 반복한 건 머리에 우주를 담은 남자였다.

“머리통 안에 저거 뭐야? 하하.”

마루는 장난스럽게 웃었다.

“저거, 저거…. 머리통 속에 담은 우주는 독수리 성운의 창조의 기둥이야. 별들의 탄생지야.”

사비는 속삭이듯 얘기했다.

“사람 남자죠? 누구세요? 혹시 폴리페서…예요?”

골리 선생님은 기대감으로 볼이 발그레했다.

“너희는 이 뗏목을 타고 3500㎞를 가면 그곳에 도착할 것이다.”

“비행선이 있는데 뗏목이라뇨? 그 정도 거리라면 뗏목으로 몇 달은 걸려요. 우린 그 전에 굶어 죽을 거고요.”

마루는 아예 대놓고 까불거렸다. 아이들은 까불대는 마루를 째려보았다. 우주 아저씨가 화라도 낼까봐 걱정스러웠다. 별안간 무시무시한 폭력을 휘두를지 몰랐다. 그러나 우주 아저씨는 수리만 뚫어지게 보았다.

“수리, 너는 바로 ‘그’야. 너의 임무를 완수하기 전에 절대 죽지 않아.”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광선이 펑펑 번쩍였다. 순간 흑암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쨍쨍한 태양빛에 눈이 부셨다. 우주 아저씨는 사라지고 없었다.

비행선은 어느새 뗏목이 되었다. 아주 작고 매우 가벼운 뗏목이었다. 마치 티타늄처럼 보이는 금속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수리는 뗏목을 만지작거렸다. 신기했다.

“이거 무슨 금속일까? 가볍지만 물에서 뒤집히지 않을 정도로 적당히 무게도 있어, 물을 머금고 있나 봐. 가라앉지도 않아.”

“저것 봐. 우리 죽나 봐!”

마루의 외침은 이번만큼은 호들갑이 아니었다. 눈앞에 망망한 바다가 펼쳐져 있었고 파도의 크기는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시퍼런 파도가 마치 빗자루처럼 다른 파도를 빗질해서 뗏목 쪽으로 거칠게 쓸어오고 있었다.

“겁내지 마! 노를 저어. 어서!”

모두 미친 듯이 뗏목에 걸려 있는 노를 젓기 시작했다. 저만치서 커다란 파도 두 갈래가 기를 쓰고 벌떡 일어서더니 으르렁 소리를 내며 콰아콰아 달려왔다. 아이들은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얘지더니 "앗!”하고 비명을 질렀다.

“얘들아, 각자 로프를 몸에 감아. 그리고 서로를 묶어. 밀착해서 함께 버텨봐. 어서.”

수리는 다급하게 명령을 내렸다.

“수리야. 내가 중앙에서 무게중심을 잡을게.”

외침과 함께 골리 선생님이 육중한 몸무게로 뗏목의 중심에 서더니 어깨를 으쓱했다. 곰 발바닥 같은 두 발을 넓게 벌리고 무게중심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었다. 우르르 달려오던 두 갈래의 거대한 파도는 뒤섞이면서 거대한 소용돌이가 되었다.

“바다에도 토네이도가 있어?”

마루는 경악했다.

“웜홀 같아. 웜홀.”

사비가 소리를 질렀다.

“당겨, 로프를 당겨보라고, 빨리.”

수리가 고래고래 소리쳤다. 그러나 마루가 먼저 바닷속으로 떨어졌다.

“마루야!”

골리 선생님은 자신이 뗏목의 무게중심을 잡고 있다는 것을 잊은 듯 파도를 향해 뛰어들었다. 균형을 잃은 뗏목이 기우뚱하더니 홀라당 뒤집혔다. 수리와 사비도 바다에 빠지고 말았다. 조각난 뗏목은 멀리 날아가 버렸다. 두 갈래의 파도는 거인인 양 크게 자신을 세우더니 산처럼 높아졌다가 다시 낮아지며 바다를 쾅쾅 때렸다. 그러자 파도가 도르르 둥글게 말리며 회오리로 돌았다. 허연 물보라가 위로 솟구쳤다가 떨어졌다. 그리고 바다는 잠잠해졌다. 무서운 정적이 감돌았다.

거대한 석상이 줄지어 서 있는 외딴 섬

아이들은 회오리 속을 통과했다고 느꼈다. 몸뚱이가 발기발기 찢어지는 통증을 느꼈다. 그리고 언제쯤인가 정신을 잃었다. 해변의 따가운 모래톱 속에서 먼저 눈을 뜬 수리는 아이들을 찾았다.

“사비야. 마루야, 샘~”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앗!”

저만치 모래톱 속에 사람의 손이 보였다. 수리는 달려가서 마구 모래를 파헤쳤다. 마루였다. 케케켁 기침을 하며 마루는 정신을 차렸다.

“수리야. 살아 있는 거야? 맞아?”

수리가 마루를 부축해서 일으켰다.

“그럼. 내가 절대 안 죽는데 어떻게 네가 죽어? 지금 분명히 살아 있어.”

수리는 사방을 둘러보았다. 한참 떨어진 곳에 옷가지가 보였다 수리와 마루는 급하게 달려갔다. 골리 선생님과 사비가 부둥켜안고 쓰러져 있었다. 사비는 이미 가늘게 눈을 뜨고 있었다.

“마루야. 넌 자격증 있잖아?”

마루는 입을 삐죽거렸다. 골리 선생님의 입에 대고 인공호흡을 여러 차례 실시했는데도 영 살아나지 않자 골리 선생님의 가슴에 귀를 갖다대었다.

“분명 심장 박동이 있거든, 근데 눈을 안 떠. 이상해.”

수리와 사비가 킥킥거렸다. 마루는 또다시 인공호흡을 실시했다. 골리 선생님은 역시 꿈쩍도 하지 않았다. 수리가 사비를 슬쩍 밀었다. 사비가 골리 선생님의 겨드랑이를 간질였다. 골리 선생님은 키득키득 웃었다. 마루는 버럭 화를 내며 말했다.

“샘, 언제부터 살아계셨던 거예요?”

“난 죽었던 적이 없거든. 이렇게 날 살리려고 애를 쓰는 너희가 있어서 참 행복하다.”

아이들은 그제야 자신들이 도착한 곳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멀리서도 벌써 이스터 섬의 거인석상들이 줄지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이스터 섬이지? 우리가 도착한 이스터 섬은 어떤 시대일까? 구석기, 아니면 훨씬 더 오래 전? 몇만 년? 몇억 년…? 아니면 현재일까?”

미지의 세계에 대한 탐험을 생각한 사비가 흥분했다.

“아니면 또 다른 행성일까?”

수리도 가슴이 마구 뛰었다.

“난 이스터 석상을 만들던 그때였으면 좋겠다. 이왕이면 일꾼들에게 먹을 음식을 많이 줄 테니까.”

마루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난, 어떤 시대이건 상관없어. 어떤 행성이던 상관없어. 그 이상한 문자를 창조했던 그 시대였으면 좋겠어. 그래야 그 비밀을 풀지. 그 비밀을 풀어야만 아빠도 찾을 수 있고.”

수리의 눈빛이 유난히 반짝였다. 아이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한꺼번에 달려갔다.

하지윤은 시인·소설가. 판게아 시리즈 1권 『시발바를 찾아서』, 2권 『마추픽추의 비밀』, 3권 『플래닛 아틀란티스』를 썼다. 소년중앙에 연재하는 ‘롱고롱고의 노래’는 판게아 4번째 시리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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