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왜 케찹통이 없어요?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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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 케찹통? 병실에서 햄버거나 피자 시켜 먹나?

나가 말한다. "교수님, 저 환자가요, 자기는 왜 케찹통이 없냐고 이상하게 생각해요".

(흐흐흐, 캣찹 통 없으면 좋아 해야지 원..... 다시 달아 줄까...)

케찹통이 뭐냐구? 바로 피 주머니를 얘기 하는 거다. 왠 피 주머니?

환자들의 병든 조직을 떼어낸 빈 공간에 죽은 피나 체액이 고이면 상처가 더디게 낫기 때문에

배액관을 넣고 이를 몸밖으로 빼어 내야 한다.

이 때 나온 피나 체액을 배액관에 연결해서 모아두는 통이 바로 피주머니(hemobag)다.

통모양과 색깔이 케찹통과 비슷하여 젊은 환자들이 케찹통이라고 별명을 붙였나 보다.

군대 갔다온 남자 환자들은 수류탄이라고도 하고...

이 피주머니에 음압(negative pressure)을 걸면 몸안에 고여있는 쓸데 없는 체액이 나오게 되어 있다.

옛날 필자가 전공의로 일 할 때는 이게 없어서 체액이 나오는대로 거즈를 적시게 되니까 하루에 몇번씩 드레싱을 바꾸어야 했다.

환자도 의사도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른다. 요즘 신세대 의사들은 신선 노름이다.

그래도 나름대로는 고생이 많다고 외과를 기피한다나?...어휴.

갑상선 수술에도 이 케찹통을 애용한다. 모두가 알다시피 갑상선은 혈류와 림파절이 많은 장기다.

수술 후에 갑상선이 있었던 빈공간에 이런 체액이 잘 고인다.

그래서 갑상선외과 의사들은 케찹통 달기를 좋아 한다. 소심한 친구들은 두 개까지 걸어 둔다.

그런데 케찹통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다.

음압으로 체액을 땡겨 내다 보니 미세한 림프관이나 혈관들이 그냥 두면 막혀 더 이상 배출액이 나오지 않게 되는데 음압에 걸리다 보니까 이게 막히지 않고 계속 나오게 된다. 당연히 퇴원이 늦어 진다. 일본의 노구찌 병원은 이런 생각 때문에 수술 다음날 무조건 케찹통을 제거한다.

또 배액관을 설치하면 환자에게 거추장스럽고 설치한 자리에 작은 자국이 남는다.

물론 시간 지나면 흐미해져서 잘 안 보이게 되지만. 또 케찹통 값이 몇 만원 추가된다.

얼마전 부터 전세계 갑상선 외과 의사들 중 일부가 케찹통을 모든 환자에게 설치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즉 수술이 깨끗이 마무리 된 환자는 케찹통을 달지 않는 것이 더 유리하다는 생각에서다.

남아 있는 체액은 그냥 둬도 우리 몸이 알아서 재흡수를 해주기 때문에 문제가 안된다는 것이다.

필자도 이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쪽에 선다.

몇 년전에 케찹통을 단 그룹과 달지 않은 그룹을 비교해 봤더니 달지 않은 그룹이 퇴원이 빠르고 만족도가 높았다.

그러나 수술이 크고 나이가 많은 환자들은 배액을 시키는 것이 더 유리하였다. 이 결과를 학회에 발표했더니 반응이 별로였다.

그러나 지금은 전세계적으로 케찹통을 쓰지 않는 의사 수가 점차 증가하고 있다.

필자는 현재 나이가 젊고 수술이 깨끗하게 끝난 환자는 케찹통을 달지 않는다.

환자 심리라는 것이 옆에 있는 환자는 달고 있는데 자기는 없으니까 마치 해야 할 것을 안한 것 처럼 불안감을 느끼나 보다.

또 남과 같은 대열에 서지 않으면 뭔가 불안한 것이 우리 한국인의 특성이 아닐지 모르겠다.

그런데 별 탈 없이 잘 낫고 편하고 퇴원이 빠르니까 결국에는 환자가 좋아 하는 것 같다.

무엇보다도 우리 한나가 케찹통이 없으면 좋아 한다. 환자도 편하고 드레싱도 간편하고...

흐흐 그래도 케찹통이 왜 자기에게는 없냐고 이상하게 생각하려나....ㅎㅎ.

☞박정수 교수는...
세브란스병원 외과학 교실 조교수로 근무하다 미국 양대 암 전문 병원인 MD 앤드슨 암병원과 뉴욕의 슬론 케터링 암센터에서 갑상선암을 포함한 두경부암에 대한 연수를 받고 1982년 말에 귀국했다. 국내 최초 갑상선암 전문 외과의사로 수많은 연구논문을 발표했고 초대 갑상선학회 회장으로 선출돼 학술 발전의 토대를 마련한 바 있다. 대한두경부종양학회장, 대한외과학회 이사장, 아시아내분비외과학회장을 역임한 바 있으며 국내 갑상선암수술을 가장 많이 한 교수로 알려져 있다. 현재 퇴직 후에도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주당 20여건의 수술을 집도하고 있으며 후진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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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수 교수 기자 sohopeacock@naver.com <저작권자 ⓒ 중앙일보헬스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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