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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꽃의 숨은 가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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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요즘 광릉 숲 곳곳에는 각종 야생화 꽃망울들이 하루가 다르게 활짝 터지고 있다. 가장 먼저 핀 복수초를 비롯해 얼레지.산수유.현호색.피나물.노랑 앉은부채 등이 제각기 자태를 뽐내며 온 대지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 지천으로 널려 있는 무수한 풀과 나무 중에서도 이름 모를 꽃 한 송이가 이렇게 아름다울 줄이야…. 크고 화려한 수입 꽃에 비해 비록 작지만 그 오묘한 형태와 색상이 보는 이의 마음을 절로 감탄하게 한다.

야생화란 본래 산과 들에 그 뿌리를 두고 사람의 힘이 아닌 자연의 힘에 의해 피는 꽃을 말하며, 원래부터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토착식물을 의미한다. 야생화는 일년생부터 여러해살이 풀과 나무까지 그 종류가 다양하다.

우리나라는 국토 면적이 좁고 인구에 비해 자원이 부족하다. 그러나 주변을 돌아보면 경제적으로 개발할 수 있는 야생화 식물자원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자라고 있는 4500여 종의 식물 중 우리가 평소 그저 이름 모르는 풀과 나무의 꽃으로 여기고 무심코 지나치는 야생화가 알고 보면 고혈압.당뇨 등의 성인병에 놀라운 효과가 있을 뿐 아니라 암과 같은 각종 질병을 예방하고 치유하는 신비한 효능이 있음이 하나씩 밝혀지고 있다. 이렇게 우리 산야에 자라는 야생화는 유용한 자원으로서 우리 기술에 의해 산업화가 이루어져야 하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예를 들어 나리류(백합과)는 전 세계에서 한반도가 최대 분포 지역이었으나 이것이 알게 모르게 외국으로 반출돼 수많은 품종으로 개발돼 지금은 역수입되고 있는 사실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몇 년 전부터 자생식물에 대한 관심이 한층 높아졌으며, 이러한 야생화 식물자원으로부터 다양한 물질을 찾아내려는 노력도 많이 시도되고 있다. 앞으로 야생화를 자원화해 그 경제적 가치를 높여 나가는 방법을 몇 가지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전통적으로 약용식물로 분류됐던 야생화에 대한 유전정보를 체계적으로 분석해 우리만이 가질 수 있는 특유한 신물질 개발정보를 축적하는 일이다. 이것이 바로 생물공학산업의 기본을 갖추는 첩경일 것이다.

둘째, 야생화에 대한 전 국민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일이다. 몇 년 전 어버이날과 스승의 날에 수입된 카네이션 대신 전국적으로 꽃이 크고 아름다우며 친근감 넘치는 우리 꽃인 '뻐꾹채'를 달자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실패했다. 이는 인지도와 선호도가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셋째, 늘어나는 야생화 수요에 걸맞은 소재의 공급과 그에 필요한 증식방법.재배기술 등을 개발하는 일이다. 종자로 번식이 잘되는 것은 종자로 번식시키는 한편, 구근으로 증식 가능한 것은 조직 배양 기술을 이용해 증식시켜야 할 것이다. 수요에 대한 공급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필연적으로 자연 훼손을 촉진할 우려가 있다.

넷째, 기존의 작고 아담한 야생화보다 좀 더 우아하고 화려한 신품종을 개발하는 일이다. 산야에 저절로 피는 야생화의 모습도 매력적이지만 위에서 언급한 우리 꽃 달기 운동에 필요한 물량을 공급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야생화보다 더 새로운 품종이 대량으로 생산될 필요가 있다.

다섯째, 야생화를 소재로 한 문화 콘텐트 산업의 개발이다. 우리 꽃을 소재로 한 수많은 신화와 전설 등을 최첨단 정보통신기술과 결합시켜 애니메이션이나 만화, 영화 등으로 제작해 우리 문화산업의 발전을 기하는 일이다.

최근 들어 야생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국립수목원을 비롯한 공공 연구기관과 대학에서 산업화.자원화에 대한 연구가 꾸준히 시도되고 있다. 때늦은 감이 있지만 지금이라도 국가적인 차원에서 우리 꽃에 대한 인식을 전환해야 할 것이다.

김형광 국립수목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