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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허술한 방역이 부른 메르스 공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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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이에스더 기자 중앙일보 팀장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이에스더
사회부문 기자

회사원 박모(36)씨는 최근 아랍에미리트(UAE)로 출장을 다녀왔다. 박씨가 출입국하는 동안 거친 검역 절차는 인천국제공항 입국 게이트를 빠져나오며 열감지카메라를 통과한 것뿐이다. 출국하기 전 중동에서 낙타와 접촉을 피하라는 것과 같은 주의사항은 듣지 못했다. 입국할 때도 며칠 내로 열이나 기침이 나면 즉시 보건소로 가 진료를 받고 중동에 다녀왔다고 알리라는 당부가 없었다. 귀국한 뒤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발병·뉴스를 접한 박씨는 “정부가 심각한 감염병이 도는 지역에 가는 국민에게 한마디 주의라도 해 줘야 하는 거 아니냐”며 황당해했다.

 메르스 국내 첫 환자 A씨(68)도 박씨와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중동에 다녀온 뒤 열이 나고 기침도 했지만 감기몸살 정도로만 생각했다. 동네 의원에서 진료를 받았고 그래도 차도가 없으니 더 큰 병원으로 옮겼다. 병원 네 곳을 전전한 뒤에야 자기가 메르스라는 병에 걸렸다는 것을 알게 됐다.

 국내 메르스 환자가 5명으로 늘었다. 첫 환자가 확인된 지 일주일 만에 추가 감염자가 넷으로 불어난 것이다. 감염자와 접촉했다는 이유로 집에 틀어박혀 있게 된 격리 대상자도 63명이나 된다. 아시아에서 메르스 2차 감염자가 나온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메르스는 치사율은 높지만 전파력은 강하지 않다. 그런데도 병이 확산된 데는 정부의 허술한 검역 탓이 크다. 27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의 현안보고 자리에선 보건복지부·질병관리본부를 향해 “언제라도 유입될 수 있었는데 정부가 먼 나라 일로 생각하고 소극적으로 대처해 2차 감염자를 양산했다”(이종진 새누리당 의원) 등의 질타가 쏟아졌다.

 환자 발생 전 정부가 설정한 메르스 위기 경보 수준은 ‘관심’ 단계였다. 관심 단계에서도 따라야 할 방역지침들이 있다. 중동 지역을 드나드는 국민에게 감염 예방을 위한 주의를 줘야 한다. 전국 병·의원엔 발열·기침 증세가 있는 환자가 오면 중동 방문 이력을 반드시 묻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이 가운데 지켜진 게 없다.

 만약 A씨가 출국 전에 귀국 뒤 건강이상 때의 행동요령에 대해 들었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었다. 자신의 건강을 위해서라도 곧바로 병원이나 보건소로 달려가 자신의 여행경로를 설명했을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중동 지역에서 항공편을 통해 국내로 들어온 사람은 50만 명에 달한다. “감염자의 입국 자체를 막을 수는 없다”는 질병관리본부의 항변은 맞는 말이다. 하지만 최소한 2차 감염은 줄일 수 있다. 사스·조류인플루엔자 등 국경을 넘나드는 감염병은 꾸준히 생겨나고 있다. 제대로 된 방역 시스템 구축은 이제 국가의 필수적 과제다.

이에스더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