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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기업 부활, 엔저가 다 아니다 … 체질 개선도 큰 몫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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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일본 자동차 업체 스바루(SUBARU)는 2007년까지 미국 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회사 내부에서 “고객이 원하는 차가 아니라 ‘회사가 만들고 싶은 차’를 만든다”는 자성이 나왔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확 달라졌다. 철저히 소비자 중심으로 현지화했다. 주력 차종인 레거시는 일본 영업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실내 공간이 좁다”는 미국 소비자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대형화했다. 또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수요가 많은 산간 지역을 중심으로 영업점을 재편했다. 그 결과 미국 시장에서 7년 연속 판매량이 증가한 유일한 자동차 회사로 성장했다. 영업이익률은 14%로 토요타자동차(10.3%)를 넘어서 업계 최고 수준이다.

 생산자 중심에서 소비자 중심으로 전략을 바꿔 성공한 스바루처럼 일본 기업들의 최근 실적 개선이 ‘엔저(円低·엔화 약세)’ 효과 때문 만은 아니라는 분석이 나왔다. 한국무역협회가 27일 일본 주간지 ‘동양경제’ 자료를 정리해 낸 ‘일본 주요기업의 경쟁력 강화 사례’ 보고서에서다.

 최근 일본 기업들은 엔저 효과로 좋은 실적을 내고 있다. 지난해 도쿄증권거래소 주요 상장기업 530개사의 영업이익은 30조4000억엔(약 273조4000억원)을 기록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전인 2007년보다 4000억엔(약 3조6000억원) 늘었다. 닛케이지수도 26일 2만413.77로 마감해 2000년 4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하지만 보고서는 최근 일본 기업들의 실적 개선이 엔저 때문 만은 아니라고 분석했다. 일본 기업들의 경쟁력 강화 요인으로 ▶철저한 소비자 중심 영업 ▶지속적 연구개발(R&D) 투자 ▶획기적인 마케팅 등을 꼽았다.

 예컨대 미쯔비시 연필은 소비자 수요에 맞춰 다양한 제품을 출시했다. 볼펜·샤프를 결합한 사무용 다기능 펜, 본체 굵기를 얇게 만든 여성용 ‘F 시리즈’와 5만원 상당의 고급 사무용 볼펜 ‘프라임 시리즈’ 등을 잇따라 선보였다. 지난해 매출 603억엔(약 5400억원), 영업이익 71억엔(약 600억원)으로 3년째 최고치를 갱신했다.

 의료기기 전문업체 마니는 기술력 향상에 주력했다. 연 2회에 걸쳐 ‘세계 제일인가, 아닌가’라는 주제로 사내 회의를 열어 기술력이 떨어지는 제품을 폐기했다. 안과용 나이프 시장에선 연내 세계 최대기업인 스위스 알콘사를 제칠 것으로 예상된다. 고부가가치 제품에 주력한 덕분에 영업이익률이 34%다.

 유아용품 업체 피죤은 중국 시장에서 획기적인 마케팅으로 인기를 끌었다. 2009년부터 중국 정부와 손잡고 1854개 병원에서 ‘모유수유 교육활동’을 펼쳤다. 그 결과 젖병·모유패드 같은 제품 매출이 전체 매출의 30% 이상을 차지한다. 중국 유아용품 매장의 20%가 피죤 전문 코너를 설치해 물건을 팔고 있다.

 김은영 무협 도쿄지부장은 “일본 기업들은 기나긴 엔고와 경기 침체 속에서도 꾸준히 생산을 효율화하고 연구개발(R&D)에 투자해 경쟁력을 끌어올렸다”며 “최근 원화 강세로 어려움을 겪는 한국 기업도 기술력을 높이고 시장 요구에 신속하게 부응하는 방향으로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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