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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한 화요일] 바다 밑 어디까지 봤니 … 한국 무인잠수정, 5775m까지 갔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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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한국해양과학기술원의 백세훈·김방현·김웅서 연구원(뒤쪽부터)이 18일 거제도 남해연구소에서 심해용 원격무인조종잠수정(ROV) 해미래를 조종하며 성능 테스트를 하고 있다. [거제=송봉근 기자]

지난 18일 거제도 한국해양과학기술원 남해연구소. 장목 부둣가 컨테이너 조종실에서 김방현(43) 박사가 조심스럽게 조이스틱을 움직인다. 모니터에 커다란 물거품을 일으키며 바닷속으로 들어가는 원격무인조종잠수정(ROV)이 나타났다. 이름은 해미래. 김 박사는 “프로펠러가 아래쪽 물을 위로 뿜어 올리며 잠수를 한다”고 설명했다.

 해미래에는 이런 프로펠러가 상하좌우에 각 1개, 뒤쪽에 2개 달려 있다. 연구팀은 이날 각 프로펠러를 번갈아 작동시키며 해미래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지 확인했다. 다음달 동해 탐사를 앞두고 실시 중인 최종 테스트의 일환이었다. 12일 거제도를 출발해 2주간 울릉분지(울릉도 남쪽의 수심 2000m 해저 분지), 왕돌초(경북 울진 동쪽에 있는 수중 바위) 등을 돌아오는 일정이다.

바다눈(Marine Snow·海雪) 바다 표면에서 죽은 플랑크톤이 잘게 분해돼 떨어지는 것. 꼭 흰 눈처럼 보인다고 이런 이름이 붙었다. 심해잠수정을 타본 과학자들은 “심해에서 본 가장 감동적인 장면”으로 바다눈을 꼽는다. 사진은 원격무인조종잠수정(ROV)이 촬영한 바다눈의 모습. [사진 오세아나재단]

 “부두까지 위치 확인해 주세요.” “2m, 1m….” 조종실 밖 동료와 무전을 주고받는 백세훈(28) 연구원의 목소리에 활기가 넘친다.

 심해는 지구에 남은 마지막 미지의 땅이다. 이곳엔 햇빛이 들지 않는다. 대개 수심 200m 아래쪽이다. 한반도 주변에선 동해가 대부분 심해다. 이곳의 평균 수심이 1684m고 가장 깊은 곳은 4049m나 된다.

 심해는 사람들이 아는 ‘보통 바다’와 사뭇 다르다. 수온이 1년 내내 영상 1도 이하다. 물의 대류가 없어 1000년 이상 된 물이 그대로 고여 있고 바닥 퇴적물도 썩지 않는다. 수압은 10m를 내려갈 때마다 1기압씩 올라간다. 세계에서 가장 깊은 마리아나해구(수심 1만990m)의 수압은 평균 체격의 여성을 점보 제트기 48대로 짓누르는 압력과 같다. 바다 표층에서 죽은 플랑크톤이 분해돼 눈처럼 떨어지고(바다눈·marine snow) 땅속에는 불을 붙이면 활활 타는 ‘얼음덩이’가 가득하다. 메탄가스가 높은 압력을 받아 수분과 결합된 메탄하이드레이트다. 동해에만 이런 ‘불타는 얼음’이 국내 가스 소비량 100년치만큼 묻혀 있다고 한다. 심해가 ‘지구 속 우주’로 불리는 것은 이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극한 환경의 심해를 어떻게 탐사하느냐다. 일반 잠수함의 잠수 심도는 약 150m, 첨단 핵잠수함이라도 500~700m 정도가 한계다. 해양 전문가들은 “우주를 탐험하려면 우주선이 필요하듯 심해를 탐사하려면 특수 심해잠수정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해미래의 전자보드는 티타늄 용기, 전기배선은 절연유를 가득 채운 상자(압력 보상기) 안에 들어 있다. 심해의 엄청난 수압을 견디기 위한 설계다. 모선(母船)에서 유선으로 전원을 공급하고 로봇팔을 원격조종해 시료를 채취한다. 일종의 ‘탐사로봇’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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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양 선진국들은 ROV 외에 유인잠수정도 여러 대 보유하고 있다. 일본은 수심 6500m급 신카이(しんかい)6500, 중국은 2012년 세계 최고 유인잠수기록(7062m)을 세운 자오룽(蛟龍)을 자랑한다. 미국은 1960년대부터 써 온 수심 4500m급 앨빈을 최근 6500m급으로 개량했다.

 일본은 한 발 더 나아가 올해 초 “수심 1만2000m급 잠수정(신카이12000)을 건조하겠다”고 발표했다. 특히 과학자들이 머무는 공간(거주구)을 강화유리로 만들겠다고 선언해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기존 잠수정은 티타늄으로 거주구를 만들었다. 밖을 내다볼 수 있는 창은 최대한 작게 제작했다. 1만2000m급 잠수정 거주구를 강화유리로 만들겠다는 것은 ‘내압(耐壓) 기술의 한계’를 뛰어넘겠다는 얘기다. 일본은 잠수정 탑승인원도 기존 3명에서 6명으로, 잠항시간은 평균 10시간에서 이틀로 늘릴 계획이다.

 한국은 2006년 해미래를 개발했지만 이제까지 탐사 실적은 다섯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해양과기원 심해저자원연구부의 김웅서 책임연구원은 “출산비만 주고 양육비를 안 준 탓”이라고 말한다. 심해 탐사는 하루에만 1000만원가량 드는데 운영비 지원이 넉넉지 않았다는 얘기다. 유인잠수정은 한 대도 없다. 250m급 ‘해양250’은 96년 퇴역했다. 2020년까지 개발하려던 수심 6500m급은 지난해 기획재정부의 예비타당성 심사에서 떨어졌다. 해양과기원 관계자들은 “왜 필요한지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부족하다는 게 심사 탈락 이유였다”고 말했다.

 ROV가 있는데 유인잠수정이 또 필요할까. 실제 심해잠수정을 타 본 과학자들은 ‘그렇다’고 말한다. 2002년·2004년 일본의 신카이6500을 타고 인도양·서태평양을 탐사했던 김동성 해양과기원 박사는 “흔히 심해의 90%가 아직 비밀에 싸여 있다고 하나 실제로는 그 이상이다. 바다는 생명이 살아 숨 쉬는 곳이라 모든 것이 유기적으로 다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그런 곳을 직접 가 보는 것과 무인 모니터만 들여다보는 것은 차이가 크다”고 말했다. 해양과기원은 올해 다시 예비 타당성 심사를 신청할 계획이다. 

거제=김한별 기자 kim.hanby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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