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여유를] 14. 다이어리를 바꿔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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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3면

사람들은 성공하는 사람의 습관을 닮으려고 애쓴다. 그 중에서 가장 많이 추천되는 방법이 다이어리 활용법이다.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나 이미 처리한 일 등을 잘 정리하고 정보.아이디어. 회의. 대화 등을 다이어리에 자세히 기록하는 습관은 성공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특징이라고 한다.

뿐만 아니라 하루의 시간을 쓸데없이 낭비하지 않고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일정관리법은 성공의 필수조건으로 여겨진다.

오늘도 성공하고 싶은 많은 사람이 다이어리를 열며 의욕적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그러나 정작 다이어리를 펴보면 빈틈없이 꽉 찬 일정에 겁부터 먼저 난다.

특히 월요일이면 연속적으로 계획돼 있는 회의 일정에 숨이 콱 막혀온다. 아무도 즐거워하지 않는 회의를 왜 해야 하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저 일정에 잡혀 있는 까닭에 회의실로 모여든다.

회의뿐 아니다. 하루를 끝낼 때가 되면 만족스럽게 처리한 일보다는 연기나 취소된 일들이 더 많다. 미처 기록하지 못한 약속이 뒤늦게 생각나 당황하기도 한다. 그 놈의 '성공 다이어리' 때문에 하루에도 몇 번씩 가슴을 쓸어내린다.

바쁜 일정에 미리 겁먹고 조바심낼수록 일은 안 풀리게 돼 있다. 사소하게 꼬이는 일에 분노하기 시작하면 분노는 어느 새 파도가 되고, 폭포가 된다. 분노는 '사스'다. 분노는 나를 둘러싼 사람들에게 아주 쉽게 감염된다. 결국 격리치료만이 해결책이다.

다 그 '성공다이어리' 때문이다. 의무와 책임으로 가득한 다이어리는 오늘도 나를 '사스'환자로 만든다(최근에 내가 다이어리를 새로 구입했기 때문에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바쁠수록 우리를 부추기는 성공의 신화를 잘 살펴봐야 한다. 소위 성공했다고 여겨지는 사람일수록 끊임없이 쫓기는 삶을 산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마치 언덕을 오르는 자전거를 타고 있는 모습이다.

페달 밟기를 멈추는 그 순간 그대로 넘어지거나 뒤로 정신 없이 밀려나기 때문이다. 남들은 성공했다고 부러워하지만 본인은 그 성공을 즐길 여유조차 없다. 그저 낑낑거리며 바쁘게 산을 오를 뿐이다. 그러나 일찍 올라가면 그만큼 일찍 내려온다.

당신은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아주 피곤한 표정으로, 그러나 약간은 교만하게 말한다. "요즘 바빠서 정말 정신 없어." 요즘 잘 나간다는 뜻이다.

전화연결이 잘 안되고 약속시간에 늦을수록 사람들은 성공했다고 여긴다. 그래서 바빠서 피곤하고, 아주 자주 화를 내면서도 스스로 성공한 것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바쁜 것이 성공이 아니다. 내가 얼마나 행복한지를 느끼는 것이 성공이다. 다이어리를 바꿔야 한다. 새 다이어리는 내가 이미 소유한 것들에 대한 감사, 즐겁고 행복한 일에 대한 기대로 가득 차 있어야 한다. 자주 웃고, 많이 사랑하는 것이 성공이다.

김정운 명지대 대학원 여가정보학과, 문화심리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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