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는 감정보다 국익이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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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8호 31면

한·일관계가 경색되기 시작한 지 3년이 된 지금 조금씩 변화의 징후가 감지되고 있다. 아직 우리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지만 역사인식에 관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 정부의 입장이 바뀌어가고 있다. 지난 4월 미국 상·하원 합동연설에서 아베 총리는 역사인식에 관해 역대 총리들이 발표해온 입장을 계승하겠다고 밝혔다. 취임 초기 고노 담화와 무라야마 담화를 부정하려던 움직임과는 사뭇 달라진 모습이다. 기타오카 신이치(北岡伸一) 전 도쿄대 교수는 아베 총리의 핵심 브레인으로 8월 ‘아베 담화’에 대한 자문을 위해 조직된 ‘21세기 구상 간담회’의 좌장대리다. 그는 간담회 석상이나 일반 세미나를 통해 아베 총리가 침략전쟁을 시인해야 한다고 연일 주의를 환기시키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우리는 그간 취해온 대일 강경정책으로 인해 우리 국익에 부정적인 측면은 없었는가 하는 점을 돌이켜보아야 한다. 2012년 당시 350만명에 달했던 한국방문 일본인 관광객 수는 2014년 시점에서 250만명 이하 수준으로까지 떨어졌다. 불과 5~6년 전만 해도 일본인의 한국에 대한 호감도는 60%를 상회하는 높은 수준이었으나 최근에는 30%대까지 떨어졌다. 양국 간 수출과 수입 등 무역액도 감소하기 시작했고 일본 기업들의 대한 투자도 급격하게 축소되었다.

2001년 이래 유지되어온 한·일간 통화스와프 협정은 종료되었다. 최근 미·일간 가이드라인 개정을 통해 미·일동맹의 안보협력이 최고 수준으로 격상되면서 우리 안보체제에 주게 될 영향도 커졌는데, 한·일 양국 간 실질적인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도 유의해야 할 사항이다.

물론 필자도 영유권 및 역사관련 문제에 관한 일본 측의 억지 주장과 그릇된 견해에 대해서는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로 인해 지난 2~3년 동안 한·일 정상회담은 물론, 여러 수준의 교류와 접촉이 제한되면서 우리의 국익에 부정적인 영향이 나타나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 보아야 한다.

지난 5월13일 한·일경제인회의에서 논의된 것처럼 상호 관광객과 무역액, 그리고 대한 투자액 감소로 입게 되는 경제적 손실은 적지 않을 것이다. 한·일관계 악화 속에 한·미·일 대북 정책공조체제가 원활히 작동되지 않는다면 우리의 외교 잠재력이나 안보태세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러한 정황을 고려하여 영유권이나 역사인식 문제에 대한 대응과 분리하여 외교안보나 경제 측면에서는 국익을 위해 한·일관계를 신중하게 관리해야 할 필요성이 분명해 보인다.

에즈라 보겔 등 영미권의 대표적인 동아시아 연구자들이 아베 정부의 역사인식에 경종을 울리면서도 한국이나 중국이 역사문제를 외교에 이용해선 안 된다는 우정어린 충고를 하였다. 역사문제에 관해 우리와 보조를 맞추었던 중국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도 지난 4월22일 아베 총리와 두 번째 정상회담을 갖고 중·일관계 개선방안을 논의하였다. 북한의 정정 불안은 한·미·일 간의 보다 강력한 대북정책 공조를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시기일수록 일본과 경제·안보·외교에 걸친 협력기조를 복원하는 것이 국익에도 부응하고 동북아 안보정세에도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수순이 될 것이다.

6월 방미를 앞둔 박근혜 대통령이 종전처럼 일본의 역사문제를 재론하기보다는 심각성을 더해가는 북한 핵문제, 글로벌 안보문제에 대한 한·미동맹 간의 전략적 논의를 심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6월 초 싱가포르에서 개최되는 샹그릴라 안보대화에 참가하는 한·일 국방장관이 서로 회합을 갖고 상호 정세인식과 안보정책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는 것이 국가안보태세 강화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일본 내의 일부 왜곡된 역사인식과 보수우경화의 흐름을 바로잡기 위해서라도 학생·시민·지자체 차원에서의 한·일간 다양한 접촉과 교류확대를 재개해야 한다.

박영준 국방대학교 안보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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