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내 기타는 잠들지 않는다 8. 기타와 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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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고교 시절 필자는 조악한 광석 라디오로 미군 방송을 들었다. 사진은 녹음실에서 전문가용 헤드폰을 쓴 필자.

그땐 라디오조차 구하기가 어려워 '광석 라디오'를 사용하는 젊은이가 많았다.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바리콘'이란 주파수를 돌리는 부속품을 구해다 광석과 접촉시키고 안테나에 연결했다. 거기에 비행기 조종사나 탱크 부대원들이 사용하는 리시버(헤드폰)를 연결하면 소리가 확대돼 들렸다. 제일 잘 잡히는 방송이 미군의 24시간 음악 방송인 AFKN이었다. 잡음이 많이 섞였지만 그래도 좋았다. 라디오를 방안에 몰래 숨겨놨다가 밤에 혼자 듣다가 잠이 들곤 했다. 미군 방송에선 재즈부터 기타 사운드까지 포괄적이면서도 세세한 장르를 망라해 들을 수 있었다. 그때 음악을 듣는 귀가 트였다.

라디오로 들은 음악을 연주하려면 기타 교본을 구해야 했다. 교본 살 짬을 내는 게 급선무였다. 그러던 어느 날 공장 지배인이 자전거를 한 대 가지고 왔다. 약 배달 나갈 사람을 구하던 그는 내게 물었다.

"자전거 탈 줄 아나?"

"예. 탈 줄 압니다."

사실은 자전거를 한 번도 타보지 못했다. 어릴 때 어머니가 "자전거는 쓰러지는 쪽으로 핸들을 틀면 안 쓰러진다"고 말씀하셨던 기억이 퍼뜩 떠올라 무턱대고 용기를 냈다. 그는 자전거를 내밀더니 타 보라고 했다. 무조건 올라탔다. 당연히 쓰러졌다.

"야, 야! 안 되겠다. 가져 와."

자전거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죽기 살기로 덤볐다. 그걸 못 타면 또 공장 안에서 꼼짝 못할 터였다. 어머니 말씀을 떠올리며 계속 밀고 나갔더니 자전거가 굴러가기 시작했다. 정신력이었다.

"오랜만에 탔더니…. 좀 서툴러 보였죠?"

"그랬구먼. 내일부터 배달 나가라."

합격이었다. 자전거에 약품을 싣고 시내로 나가기 시작했다. 숨통이 트였다. 나는 종로 5가의 큰 도매상과 몇몇 대형 소매상에 약을 배달했다. 나중에는 수금도 담당했다. 일처리는 정확하게 했다. 신임을 얻자 일요일에는 쉬게 해줬다.

쉬는 날이면 기타 교본을 구하느라 무척 바빴다. 미도파백화점 건너편 명동 입구에는 책이 산같이 쌓여 있었다. 미군 부대에서 나온 책들을 트럭으로 실어다 쌓아놓고 50원, 100원씩에 팔았다. 거기서 한달에 두어번 나오는 '선 폴리오(Sun Folio)' 등의 악보집을 샀다. 세계적인 유행곡 7~8개의 코드가 담겨 있었다. 그걸 보고 죽어라 기타를 쳤다. 실력은 놀라운 속도로 늘었다. 젊음의 힘이었다.

나는 요즘 젊은이들에게 자주 당부하고 있다. 그 시절에 목표를 세워 집중하면 엄청난 결실을 맺는다고, 그 시절은 다시 오지 않는다고….

공장도 나날이 번창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남의 일이었다. 심적인 압박감은 점점 커졌다. 노동에 내 미래를 걸 수는 없었다. 무언가를 찾아 나서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내가 없으면 회사가 돌아가는 데 어려움이 있을 정도로 내 역할이 커졌다. 청춘은 지나가고 있었다. 더 이상은 견딜 수 없었다. 내 인생을 개척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인기척이 없는 한밤중, 기타 하나 달랑 들고 공장을 빠져나왔다. 한동안 공장에 다시 잡혀 들어가 일하는 악몽에 시달렸다.

신중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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