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오른 볼로냐 아동도서전] 한국 어린이책, 삽화는 좋은데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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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 13일 개막한 볼로냐 아동도서전에 참여한 한국의 한 출판사의 전시장에서 출판관계자들이 상담을 벌이고 있다. 한국이 아동서 수출국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번역 등 넘어야할 과제가 많은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일러스트레이션은 세계적 수준에 다가섰지만 이야기 구조와 번역은 아직 개발도상국 수준이다. 제42회 이탈리아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에서 드러난 한국 어린이책의 자화상이다. 한국이 아동서 수출국으로 도약하기 위해 풀어야 할 숙제는 아직 많다.

단일 분야론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이 13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개막했다.

이번 도서전의 볼거리는 전시장 맨 앞에 설치한 '올해의 일러스트레이션 작가전'. 여기에 박철민.백희나.이수지.이혜경.최숙희.한성옥씨 등 한국 작가 6명의 그림이 걸렸다. 전 세계에서 작품을 제출한 3700여 명의 일러스트레이터 중에서 한국 작가 6명을 포함한 85명이 뽑혔다. 유럽 국가들과 일본이 강세를 보이는 볼로냐 도서전에서 한국은 국적 분포로 4위에 해당하는 우수한 성적을 거뒀다.

85명을 걸러낸 5명의 심사위원 가운데 한국인으론 처음으로 신경숙(초방 출판사 대표)씨가 초청된 것도 특기할 만하다. 볼로냐 도서전에서 뛰어난 아동서에 수여하는 라가치상의 2004년 논픽션부문(우수상) 수상자인 신씨는 "내가 심사위원이라고 무조건 한국 작가에게 높은 점수를 줄 순 없다. 한국의 일러스트레이션 수준이 세계 수준에 육박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평가했다. 그는 또 "볼로냐 도서전의 일러스트레이션 작가전이 한국에선 아직 잘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더 많은 작가가 출품한다면 성적은 더욱 좋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림의 수준을 글과 번역이 받쳐주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4년째 단독 부스를 열고 있는 김동휘(여원미디어 대표)씨는 "그림 수준이 성장하는 속도에 비해 메시지를 담는 글과 외국어 번역이 처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국내 최대 규모의 아동물 출판사인 비룡소의 박상희 대표도 "한국 아동서의 수출을 아시아권을 넘어 전 세계로 확대하기 위해서 우리가 반드시 넘어야 할 언덕"이라고 동의했다.

한국은 2008년 볼로냐 아동도서전의 주빈국으로 선정돼 있기 때문에 이번 도서전은 특히 관심을 모았다. 볼로냐 도서전의 주빈국 전시는 일러스트레이션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올해의 주빈국인 스페인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동시에 전시해 눈길을 끌었다.

이번 도서전에는 한국에서 보림.재미마주.사계절.나무숲.아이세움.길벗어린이.예림당.웅진씽크빅.창비 등 모두 34개 출판사가 참가했다. 도서전 전체로는 63개국에서 1100여 개 출판사가 참여해 저작권 상담 등을 벌였다.

국내의 대표적 출판사이면서도 해외 도서전엔 처음 참가한 창비의 강일우 부장은 "해외 도서전이 주로 외국 도서를 수입하는 창구였기 때문에 국내 작가를 육성하는 데 주력해 온 창비는 참가하지 않았다"며 "볼로냐 도서전을 시작으로 앞으로는 국내 창작물의 해외 수출 길을 여는 창구로 해외도서전을 활용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볼로냐=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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