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읽기] "보수세력도 민주화 이행의 한 기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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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한국 보수세력 연구
남시욱 지음, 나남출판, 654쪽, 3만5000원

"한국 보수세력의 뿌리는 조선조 말 1870~80년대에 수구적인 집권세력에 맞서 문명개화와 부국강병을 도모한, 당시로서는 진보적인 개화파다. 박규수.오경석이 개화파 1세대라면, 김옥균.서광범.서재필은 2세대다. 제3세대는 이승만.안창호.김규식 등 독립운동가다. 이중 이승만은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한국 보수세력의 시조 격이다."(542쪽)

'한국 보수세력 연구'는 보수 세력의 뿌리와 흐름과 함께 공과에 대한 자리매김을 시도한 묵직한 저술로, 두 가지 점에서 값지다. 우선 저자의 지적대로 "지난 20여년 근현대사를 해석하는 역사전쟁에서 진보세력에게 일방적으로 밀려왔던"(545쪽) 보수세력이 그간의 진보 콤플렉스에서 벗어날 수 있는 토대 마련에 일정하게 기여한 점이다. 또 하나 이 책은 언론인 저술의 한 모델이다.

동아일보 출신으로 신문방송편집인협회장.문화일보 사장과 함께 고려대 석좌교수를 거친 저자는 저널리즘의 탄력성과 아카데미즘의 엄밀성을 조화시킨 열매 하나를 이 책에서 거두고 있다. 그런 시도는 보수세력의 출발을 미군정의 이식으로 파악하는 통념을 거부하는 데서도 확인된다. 실제로 책의 200쪽 가까이가 해방 이전인 개화기.식민지시대의 보수세력 이념 분석에 할애된다.

저자에 따르면 그런 뿌리를 가진 보수세력은 근대국가 설립과 산업화라는 성공은 물론 민주화 이행에서도 성공을 거둔 당당한 주체다. 이를테면 80년대 후반 6월 항쟁은 김영삼.김대중이 이끄는 보수야당과 김수환 추기경 등 보수세력의 힘을 무시 못한다. 그러면 이 책은 보수세력에 대한 찬양일까. 그건 아니다. 독재 등 권위주의 정치에 앞장서거나 협력한 과오 지적과 함께 부정부패 문제도 지적한다. 그것은 부국강병에 대한 강박관념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정당 정치에 대한 집중 때문에 사회변화 등에 대한 입체적 분석이 소홀한 한계도 눈에 띄지만, 그것이 이 연구서의 미덕을 덮지는 못한다. 1990년대 이후 형성되온 보수.진보 이념의 차이를 건너지 못할 강으로 구분하지 않은 점, 이를 이상주의(진보)와 현실주의(보수) 사이의 갈등으로 파악한 시각도 두 이념의 새로운 수렴 가능성에 대한 기대로 보인다.

조우석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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