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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폭력적 시위문화 이젠 바꾸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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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전.의경의 부모들은 길바닥 한쪽에서 식사하고 있는 자식들의 모습을 지켜보면 가슴이 아리고, 방송 화면을 통해 그들이 시위대에 매 맞는 장면을 바라보면 자식 걱정에 온 가족이 서로 붙들고 운다고 한다. 이들이 거리로 나서 목소리를 높이려고 하는 데는 이 땅의 아들로 태어나 군복무를 수행 중인 전.의경들이 강경진압의 멍에를 쓰고 매도되는 것이 너무나 억울하다는 반발심리가 깔려 있다.

시위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각자 절박한 사정이 있고 자신들의 주장에 우리 사회가 귀 기울여 주기를 기대한다. 따라서 목소리를 높이고 떼를 쓰면 무언가를 얻을 수 있다는 경험법칙을 믿고 이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폭력이 난무하는 과격시위는 처음에 내세웠던 주장의 진실성을 퇴색시키고, 절실한 호소의 설득력을 감소시켜 결코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없게 만든다.

선진국에선 평화로운 집회는 최대한 보장하지만 폴리스라인을 침범하는 등 규정을 위반하는 불법 폭력시위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대처한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에서는 지난달 20일 25년 만에 뉴욕 대중교통노조가 파업에 나섰지만 어떤 폭력도 없이 평화적 시위를 고수한 채 파업을 마쳤다. 미국경찰은 법에 어긋나는 시위는 엄격하게 단속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2003년 봄 샌프란시스코에서 반이라크전쟁 시위가 벌어졌을 때는 1300여 명을 대거 체포했고, 1999년 시애틀에서 열린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 반대시위 때는 최루탄을 쏘며 진압했다. 프랑스에서는 시위대원이 총포류 등 무기는 물론 화염병과 같은 인명 살상 가능성이 있는 흉기를 소지하는 자체가 불법이다. 경찰은 직업경찰관 가운데 별도로 선발해 훈련시킨 폭력시위 진압병력을 현장에 배치하고, 일단 진압작전에 들어가면 철저하게 체포한다.

우리 사회에서도 이제는 폭력적인 시위문화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되고 있다. 이를 위한 방안들을 살펴보면 먼저 질서 유지의 1차 책임을 집회 주최 측에서 담당하고, 평화롭고 안전한 행사 진행을 위해 사전에 경찰과 정보를 교류하는 등 실질적인 협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양측 간에 '신사협정'을 맺고 현장 상황을 참관하는 중립 감시인단을 구성할 필요가 있다. 그 다음으로 경찰은 폭력시위에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시위대와 직접적으로 접촉하는 최일선에는 시위 관리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과 훈련을 시키고 국민에 대한 봉사정신과 책임의식이 투철한 전문경찰관을 배치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들에게 안전하고 성능 좋은 장비들을 지급하고 위험한 업무 수행을 감당하는 데 따른 적절한 대우를 보장함으로써 현장에서의 침착한 대처와 철저한 감정 통제를 요구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근본적인 시위 발생의 원인 해결을 위한 사회적 노력이 요구된다. 정부 당국과 정치권은 우리 사회에서 이해관계가 대립하는 세력 간 갈등이 공론의 장에서 대화와 타협을 통해 적절하게 해소되지 못하는 것에 대해 무한책임을 느껴야 한다. 자신들을 대신해 전.의경들이 거리에서 시위대와 맞서야 하는 상황에 대해 가슴 아파하며, 합리적인 정책 대안을 마련하려는 노력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시위대의 안타까운 죽음도, 전.의경 부모들의 서러운 눈물도 없는 사회. 그 해답은 성숙한 시위문화에 달려 있다.

곽대경 동국대 교수·경찰행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