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박영철-연세대교수·경제학|불필요한 규제로 경제자율화 저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정부가 자율과 창의에 바탕을 둔 시장경제질서정립에 주력하여온지도 이제 4년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산업구조의 고도화에 부응하며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보장할수 있는 새로운 경제운영방식은 아직 그 윤곽조차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정부의 계획, 즉 산업정책을 대체하며 시장의 가격기구에 의존하는 자원배분의「메커니즘」이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넉넉지도 못한 투자재원이 효율적으로 배분되고 있는지 알길이 없다. 소득분배의 상대적인 불평등에 대한 불만은 고조되고 있으나 이를 흡수하여 해소할수있는 자율적인 조정기구가 정립되지 않고있다.
근년에 재벌그룹은 서로 다투어 반도체·컴퓨터·전기통신등 첨단기술산업에 막대한 투자재원을 투입하고있다.
투자규모로 보아 전자산업은 가위 앞으로 우리경제의 모습과 진로를 뒤바꾸어 놓을수 있으리라고 보아도 과장은 아닐것이다. 재벌그룹의 전자산업에 대한 투자는 정부의 계획이나 보조, 혹은 강요에 의해서 이루어지지 않고 그들의 판단에 따라 자율적으로 추진되고 있다고한다. 70년대의 중화학부문의 투자와는 달리 정부가 크게 개입하지 않았기 때문에 전자부문에 대한 투자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한다. 정말 그럴까?
그러면 이들 재벌기업은 어떠한 기준과 판단에 따라 전자부문에 대한 투자규모를 결정하고 있는가? 기업은 시장의 가격신호등이 지시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이에따라 산업별 투자를 선택하고 있는가? 천만의 말씀이다. 우리경제에 있어서 가격이라는 자원배분의 신호등은 아직도 제대로 작동을 하지못하고 있다. 그 가장 중요한 이유는 정부가 불필요한 규제(가격규제)는 고집하고 있으나 필요한 규제(이를데면 공정거래)는 등한히 하고 있기때문이다. 아무리 기업이 정부의 간섭없이 자발적으로 추진하는 투자라해도 그것이 임의의 기준에 따라 결정된다면 그결과는 중화학투자의 쓰라린 경험이 보여주듯 과잉·중복투자, 즉 자원의 낭비로 나타날것이다.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보장하는 경제에 있어서 소득분배의 갈등은 결국 이와 해를 달리하는 여러 집단간의, 그리고 계층간의 타협과 양보에 의해서 결정될수밖에 없다. 그러나 자율화가 부진한관계로 이러한 조정방식이 정착할수있는 여건마저도 조성되지않고 있다.
그러면 우리사회에 있어서 경제의 자율화를 가로막고 있는 요인은 무엇일까. 우선 경제자율화의 목적과 당위성에대한 인식과 이해가 사람마다 다른것같다. 자율화는 순수한 시장경제의 구축을 의미하지 않는다. 우리가 지향하는 자율화는 포괄적이고 광범위하며 무분별한 정부의 경제통제를 지양하여 민간경제의 활동영역을 확대시키며 아울러 정부는 정부가 가장 능률적으로 할수있는 일과 또 해야만할 규제에만 전념토록하는 경제운영상의 분업을 의미한다.
경제적인 효율성의 제고는 분명 자율화가 겨냥하는 효과이나 그것만이 유일한 목적이 될수없다. 효율성이 그리 중요하다면 정부의 규제에 상관없이 경제가 잘 운영되는 이상, 자율화는 불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케 된다.
자율화의 기본목적은 우리가 지향하는 정치적·사회적발전과 병행하여 경제행위와 관련된 의사결정에 참여하려는 국민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데 있어야 한다. 효율성에만 집착하는 얄팍한 사고가 자율화를 가로막고 있다.
둘째로 자율화를 원한다면 민간부문은 정부의 보호나 보조를 기대하지 말아야한다.
정부의 간여=보호라는 등식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기업은 갖은 구실을 들어 기회있을 때마다 정부에 보호와 보조를 요구한다. 자율화된 시장경제에 있어서 기업은 당연히 더 많은 위험부담을 감수해야한다. 이것이 두려워 정부의 도움을 요청할때 기업은 정부의 간여를 자초하게된다.
사회의 여러집단들이 서로간의 이익투쟁에서 발생하는 대립과 갈등의 마찰을 스스로 풀려하지않고 정부가 해결해 주기를 기대할때 자율화는 후퇴하게 된다.
세째로 경제의 자율화는 다른 부분의 자율화와 보조를 맞추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하나의 사회를 구성하는 집단과 부문은 기능적인 면에서 불가분의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어느 특정부문-예를들어 경제부문만의-우선적인 자율화란 이루어질수 없을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줄곧 경제의 자율화를 마치 독립적인 현상인양 강조하고있다.
경제의 자율화는 정부와 민간부문간의 새로운 활동영역을 구획하는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면 우리가 당면하고있는 또다른 문제는 누가 어떠한 과정을 통해 어떠한 기준에 입각하여 구획정리를 할것인가에 대해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하는데 있는것 같다. 이것이 어쩌면 경제자율화를 가로막고 있는 가장 중요한 장애요인이 아니겠는가.
자원배분의 효율성과 소득분배의 형평을 도모하기 위해우리는 정부주도운영방식을 대체·보완할수 있는 새로운 제도를 하루빨리 정착시켜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율화를 더디게하는 장애물과 이들의 제거를 위한 논의가 다시 시작되어야 하겠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