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로 가는 일본 노인들… 월 10만 엔으로 '제2인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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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 살고 있는 일본인 은퇴자 모임인 '재팬 클럽' 회원들이 댄스 강습을 받고 있다. 현재 이 클럽 회원 수는 5000여 명으로 25개의 취미 모임을 운영 중이다. [SBS 제공]

63세의 일본 여성 스에나가 지아키(末永千明)는 최근 말레이시아의 휴양지 페낭 섬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그가 사는 39층짜리 맨션의 베란다에 서면 말라카 해협의 쪽빛 바다가 눈앞에 펼쳐진다.

그는 "여기서 오래 오래 살고 싶다. 골프도 얼마 전 시작했다. 일본에선 생활에 여유가 없었는데…"라고 말했다.

마이니치(每日) 신문은 3일 르포 기사로 '연금 이민'의 사례를 소개했다. 정년퇴직.구조조정 등으로 직장을 그만두거나 사업에 실패한 노년층이 연금 수입만으로 일본에서 살기 힘들어 해외로 나가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일부 중년층은 연금을 받기 시작하는 60세 이전까지 물가가 싼 나라에서 버티기 위해 출국하기도 한다.

지바현에서 사무직으로 일하던 스에나가는 5년 전 구조조정 대상이 됐다. 손목 골절로 3년 반 동안 해 오던 출장 간병인 일도 그만뒀다. 수입은 매달 지급받는 연금 13만 엔이 전부. 남편과 사별한 지 오래됐고 결혼해 따로 사는 딸에게 손을 벌리고 싶지 않았다.

고민 끝에 스에나가는 해외 이주를 결심했다. 페낭 섬은 인터넷 검색을 통해 찾았다. 그곳의 생활비는 월 10만 엔(약 87만원). 지출 내역은 방 세 칸에 거실.식당이 딸린 아파트 임대료가 4만8000엔, 외식 위주의 식비 2만 엔 등이다.

페낭에는 스에나가처럼 5년짜리 장기체재 비자를 얻어 생활하는 일본인이 400여 명이나 된다. 그와 같은 아파트에 사는 일본인은 3년 전 2가구에서 최근 30가구로 급증했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일본보다 두 배 풍요로운 생활을 즐길 수 있다"며 연금 25만~30만 엔을 받는 연금 수령자들을 유치해 왔다. 하지만 실제로는 생활보호 대상자들로부터 문의가 많아 고민 중이다. 관광국 관계자는 "이러다간 일본인 노숙자들이 올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일본 총무성의 2004년 조사에 따르면 연금 수입에 의존하는 부부의 월 평균 지출액은 25만7000엔. 경제적으로 여유 있게 노후생활을 하려면 월 37만9000엔이 필요하다는 생명보험문화센터의 조사결과도 있다. 그러나 국민연금을 40년간 불입해 온 부부가 받는 연금은 월 13만2000엔에 불과하다. 그래서 물가가 싼 해외로 나가는 연금이민 행렬은 이어지고 있다.

태국에선 2002년 69건에 불과했던 장기체류 비자 발급이 2004년 203건으로 늘었다. 호주를 선택하는 사람도 있다. 대기업에서 퇴직한 60대 부부는 2002년 2000만 엔을 들여 콘도미니엄을 구입한 뒤 매일 오전 시간을 골프장에서 보낸다. 골프 비용은 월 3만 엔. "일본에선 일주일에 한 번만 나가도, 자녀들에게 물려줄 유산조차 없어질 것"이라고 이 부부는 말했다. 그러나 호주 정부는 지난해부터 물가와 부동산값이 급등한다는 이유로 퇴직자 비자 발급 조건을 강화했다. 도시 지역에 살려면 6500만 엔어치의 공채를 사도록 했다.

도쿄=예영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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