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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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을축년 홍수」는 서울 수재의 전설같은 얘기다.
한강이 넘쳐 용산·원효로·뚝섬·마포가 물에 잠겼다. 한강의 다리일부가 붕괴되고 나룻배가 한강로를 오르내렸다.
당시 그 홍수는 「60년 내의 최대수재」라고 했다.
때문에 「경성부」도 『대정을축의 수재』라는 책까지 써서 기록하고있을 정도다.
거기에 실린 사진중엔 시민들이 손에 손을 잡고 지붕을 거쳐 2층창문으로 피난해가는 모습도 있다. 1925년 7월18일이었다. 그때 한강인도교의 수위는 12·26m.한강홍수 관측사상 최고기록이었다.
그러나 당시 수재상황은 사망 9명, 주택 유실 4백48명, 주거반파자를 합쳐 피해자 전체가 1천3백5명에 불과했다. 물론 전국 피해는 사상6백47명등 쌀 한가마가 16원이던 때 피해액이 3천7백44만원이나됐다. 싯가로 1천억원이 넘는다.
어찌보면 이번 한강 홍수는 훨씬 큰 것이다. 홍수조절기능을 가진 댐들이 있고 수로건설공사로 하상도 훨씬 내려간 싯점에서 수위가 11m3cm나 됐다.
서울의 홍수기록은 그전에도 나온다.
1821년 순조때도 서울에선 1천79호의 민가가 떠내려가고 16명이 익사했다.
1832년에도 서울에서 폭우피해가 있었다. 서울에서 익사자만 30명이 났지만 전국적인 사망자는 3백50명이나 됐다.
그러나 그런 기록들은 물론 세계적인 홍수피해에 비할 것은 못된다.
1887년 중국의 황하홍수는 2백만명 이상을 휩쓸어 갔다. 1931년에는 4백여만명의 인명이 희생됐다.
홍수피해는 실상 세계적인 전염병이나 지진피해보다 더 심각한것이다.
우발적 홍수 (accidental flood)보다 빈발홍수(recurrent flood)의 피해가 큰 점도 주목해야한다.
댐이 붕괴되는 우발적 사고로 1889년 미국 존즈타운의 홍수는2천2백명의 인명피해를 냈다.
그러나 황하나 양자강처럼 자주일어 나는 빈발 홍수를 알면서도 대비하지 못하는게 문제다.
홍수는 학문적으로 「자연적으로 생긴 물의 최고 유출」이다. 강의 수위가 최고에 이르면 그것이 주위의 땀을 침수시키든 않든 기술적으로는 이미「홍수」 다.
내년은 바로 을축년. 우리는 60연전과 바로 금년의 일을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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